[박이은경이 만난 사람] (19) 평화혁명 꾀하는 서명숙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5년 8개월간 해외도피 끝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취재 쟁탈전 보도에서 과감히 동영상을 톱으로 올린 ‘오마이뉴스’를 보며, 불과 몇 년 전 ‘시사저널’의 독특했던 표지들을 회상하며 “역시, 선배답군!” 미소를 지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소녀와 다이어트를 하는 소녀의 다리를 대비시킨 표지라든지, 한 유력한 대선 후보의 부인에게 왕비 머리를 올려 ‘여인천하’의 이미지를 과감히 돌출시킨다든지 등의 도발적 발상의 연장 선상….

여성이슈 ‘메인’ 파격·소외문제 재밌게

6월 개편 순항…‘마초언론’ 오해 벗을 것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으며 지난 5월 1일 인터넷 최대 언론 ‘오마이뉴스’의 제3대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서명숙(48) 전 ‘시사저널’ 편집장. 두 달이 가까운 지금, 초창기 인터넷의 진보 마초성을 타파하겠다던 그의 실험은 어디쯤 와 있을까.

“(폭력 아버지를 살해한) 강릉 여중생 사건, 마산 남편 살해사건 등을 메인 화면에 올렸을 때, 네티즌들은 ‘악플’보다는 ‘지지 리플’을 달았다. 강릉 여중생 사건 대책위 관계자가 그 여중생이 풀려난 것은 8할이 오마이뉴스 덕이라고 할만큼. 정말 네티즌들은 21세기 이슈인 ‘여성’문제를 비롯해 어젠다 설정 능력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폭력문제에 대해서만은 절대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키며 시민사회로 가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제까지의 과정이 정치적 파시즘을 제거해 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면, 이젠 생활 속, 일상 속 파시즘을 제거할 때다”

그는 “오마이뉴스는 조직적으로 탈권위적이고, 더더구나 여성 폄하적이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솔직히 말해 여성에 대한 개념은 별로 없어 (상당부분 악플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보 마초’ 언론으로 비치기도 했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그러나 데스크로 일해 보니 여성 뉴스가 메인으로 가는 파격(?)이 일어나도 생각만큼 악플이 난무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단조롭고 거친 목소리와 엉성한 논리가 아닌, 현장 중심의 엄밀한 팩트(fact)로 독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학력 관련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에 대해 “전여옥의 영혼을 걱정한다”는 통렬한 비판을 내비치면서도 “(그의 기사에 대한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마초적 댓글이야말로 내가 전여옥에게 유일하게 미안한 부분”이라며 “같은 여성으로서 고통스러운 지점”이라고 토로한다. 그래서 그는 이쯤에선 오마이뉴스가 네티즌들의 악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자봉(자원봉사)’ 공개 제안을 한단다. 여성문제를 가장 잘 아는 독자층일테니까 오마이뉴스의 악성적 댓글들을 지우는 데 참여해 달라는, 그래서 국민 정신건강 증진에 기여해 달라는. 더 나아가여성들의 즐거운 인터넷 문화 참여를 위해.

“전여옥 영혼 걱정하지만, 마초적 댓글은 그에게 유일하게 미안한 부분”

그의 지휘 아래 6월 1일 단행한 오마이뉴스 창간 후 두 번째 개편은 다소 낯설었다. 시사 이슈가 긴박하게 메인 화면을 점유하다가 사이좋게(?) 2등분돼 한쪽은 시사 뉴스, 한쪽은 ‘사는 이야기’의 생활 친화적 주제로 구성한 시도는 절반은 실패를 예견한 실험이었다. 사실, 개편 초기 일주일간은 조회 수가 다소 떨어지는 듯 했으나, 현재는 오히려 예전 조회 수를 상회 중이라고. 상·하단 메뉴에도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전시회’나 박영숙씨의 사진전 ‘미친년 프로젝트’ 등 기존 오마이뉴스로서는 생경한 여성 관련 뉴스거리들이 무난한 호평을 받으며 ‘생존’ 중이다. 이 부분에서 서 국장이 꼽는 인상적인 여성 뉴스는 단연 재미 언어학자 출신의 시민기자가 보내온 강간과 화간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대한 통렬한 해석 기사. 그는 과감히 그 기사를 메인으로 올렸고 “이 업계에선 드물게” 수위 안에 드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서명숙식 재미?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 팩트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파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사의 명분과 도덕성도 현장성이 담보됐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그 ‘현장’의 의미는 다양하다. 때론 탄탄한 자료 수집과 해석도, 남이 결코 볼 수 없는 시각과 안목도 훌륭한 ‘현장’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진부한 것을 못 견뎌하는 데다가 재미 지상주의 성향 때문에 후배들에겐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후배들의 기사를 보며 ‘당신, 재미있어? 기사 쓰면서 마음이 뜨거워졌어? 미안하지만, 난 당신의 기사를 보면 졸려’란 통렬한 비판을 하곤 했다. 동성애, 장애, 빈민 문제 등 사회의 소외된 문제, 애정을 가진 문제일수록 ‘의무 방어전’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재미있는 소재의 기사들보다 10배, 100배 더 정성스럽게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엄숙 교조주의에 의해 그 기사는 식상하고 재미없는 ‘강제 급식’ 같은 기사가 돼서 데스크가 다시는 그런 유의 기사를 채택하지 않게 된다. 즉 ‘시장 퇴출’에 처해지게 되는데, 취재기자는 결코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이런 결과 앞에서 그 비주류에게 다시 한번 ‘죄’를 짓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미없는 기사’란 운명은 없다. 구성과 전달 방식을 치열히 고민해야 한다”

“기자는 발품 팔며 비천한 노동으로 권력 쌓아간다”…“난 늘 ‘변방’에 있었다”

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형식과 소재에 있어 무한대의 자유를 가진 인터넷 언론과 자기는 ‘찰떡궁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사이더로 참여해 보니 “내 (언론적) 감수성엔 인터넷적 요소가 참 많더라”고 단언한다. 시사주간지 시절 급한 성질과 자타가 공인하는 빠른 순발력은 자신만의 정보를 신속히 비벼 버무리고 싶은데 일주일이란 시간을 견뎌내야 하기에 ‘고통’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지금의 2030세대의 자연스러운 인터넷 친화력과 달리 ‘생존’을 위해 버겁게 인터넷을 익혀야 했던 세대에 속하는 그가 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한겨레’ 초대 발행인 청암 송건호 선생의 “언론인이 가져야 할 것은 역사의식과 호기심”이라는 철학을 지표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기자가 느끼기에 진정한 ‘서명숙식 재미’는 좀 비장하다. 한국의 대표적 여성 정치기자로 남성 주류 언론도 종종 못했던 특종과 취재 사각지대를 돌파한 노련미 뒤엔 끊임없는 노력과 비주류 게릴라 정신, 그리고 결벽증적인 자기 검증이 있었을 터였다. 그의 또 하나의 지표 “기자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발품, 머리품을 팔아가며 비천한 노동을 통해 권력을 쌓아간다”는 데 근거하는.

“정치부 기자 시절 당시 유력 정치인의 버스 투어에서 밀려난 적도 있다. 중앙 일간지 기자들이 왜 우리 가는데 주간지 기자가 타냐고 해서. 국회를 출입하면서도 부스도, 책상도 없이 ‘인공위성’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출입처 생활을 10여 년 감수해야 했다. 언론인 생활 내내 늘 ‘변방’에 있다 생각했지, 한번도 ‘안방’에 앉아 있다고는 생각 안 해봤다. ‘기자’란 신분에 대한 제도적 보장 없이 늘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다른 기자들 다 하는 ‘연수’조차 없는, 때론 휴일에 아이 손을 끌고 대선 후보였던 YS를 취재할 정도로 쉼이 없었던 복무에 프라이드까지 느끼며 열심히 뛰어왔다. 그렇기에 기자증 없는 시민기자들에 대한 애정이 크다. 한편으론 이들 시민기자들이 글을 쓰고 공개적으로 기록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 가히 ‘혁명’이라 생각한다”

여성정치연대 기대 못 미쳐…

‘여성’ 부채감 잊지 말아야

그는 이유명호, 오한숙희 등 다수의 페미니스트들과 교우하며 때론 ‘칠선녀’ ‘십자매’ 등의 불특정 놀이집단을 형성해 오지게 쉬며 재충전을 시도했다. 그래서 “뉴스가 다시 재미있어졌고, 남은 후반전을 힘차게 뛸 준비가 됐다”고.

마지막으로 그의 전문 분야인 정치, 그것도 여성 정치인의 전망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이라고 해서 당을 추월해 똑같이 연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 발상이다. 그러나 아주 기본적인 여성문제에 대해서조차 연대의 노력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히 비례대표 50%가 여성에게 할당됐다는 것은, 그 여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단지 전문성 때문에 발탁됐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여성’이기에 발탁된 것이다. 그래서 일반 여성들에 대한 부채의식과 함께 여성의 현실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 의무감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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