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

두 달 전쯤 원고가 산적했던 때에 누가 “선배 취향의 음악 발견”이라며 음반을 하나 틀었다. 분명히 눈에, 귀에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을 때였지만 이거다! 싶은 음악이었다.

영국 콘월 출신의 네 명의 20대 뮤지션인 이들의 데뷔 앨범은 여느 대가 못지않게 ‘매우’ 훌륭했다. 속지 소개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라디오 헤드와 콜드플레이의 교집합, 여기에 킨이나 도브즈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좋아할 음반”이다.

우선 이 음악은 멜로디 라인이 좋다. 그룹의 리더 윌 사우스의 목소리는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은데, 여기에 담백한 베이스 라인, 빠져들게 만드는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의 적절한 양념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아니, 조금은 싱거운 듯한데 그래서 자꾸 곱씹게 만들고 그때마다 좋은 맛을 우려낸다. 좀더 매력적인 것은, 구성에 여백도 많다는 점. 멜로디든 사운드든 욕심 부리지 않았다.

어떤 음악은 들으면서 머릿속이 텅 비워진다. 가수가 진성으로 내어 지르는 노래,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랩이나 혼을 빼놓는 일렉트릭 사운드의 음악은 작정하고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싶을 때 듣는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양도, 종류도, 향신료도 많고 자극적이고 톡 쏘는 음식, 여기에 탄산음료와 맥주가 추가된 뷔페나 파티 음식이다.

서틴 센시스(Thirteen senses)는 그런 면에서 매우 경제적이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적당히 호흡을 고를 수 있게 잔향과 여유가 많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 있는 10대에게는 아쉬운 감도 있겠지만,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게 하고 비싼 것만으로 승부하지 않는 향이 좋은 와인을 나눠 마시는 분위기라고 해야겠다.

처음 들었을 땐 수록곡 중 ‘트루 더 글래스(Thru The Glass)’와 ‘인투 더 파이어(Into the fire)’가 가장 좋았지만 이제는 전체 11곡 중에 9곡이 좋다. 듣다 보면 성향이 비슷한 몇몇 아티스트의 이름이 지나가는데, 절대 누구라고 떠올릴 수 없게끔 이들 스타일로 마무리돼서 좋다. 3∼4분짜리 곡 하나라도 악기의 배치를 보면 미숙하지 않다. 또 들으면서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면 ‘서틴 센시스’라는 이름만큼이나 감각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세계를 주름잡는 그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기 나라 출신인 것을 보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영국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개인적인 취향이 그쪽에 맞춰져 있다고 해야 하는 건지…음반계의 불황이라지만 이렇게 좋은 음악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음악 산업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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