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란이 만난 지구촌 여성들] (2) 부르카를 위한 변명

2001년 겨울, 슈퍼파워 미국이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아프간을 공격했다. 9·11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의 지도자 물라 오마르 그리고 여성인권 유린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부르카가 표적이 됐다. 테러리스트와 그들을 도운 이슬람근본주의 정권을 응징하고 억눌리고 고통받던 아프간의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겠다던 전쟁이 끝난 지 3년째. 오사마 빈 라덴과 물라 오마르는 종적조차 묘연하다. 부르카는 어떤가? 아프간의 여성들은 부르카로부터 해방되었는가?

2005년, 다시 찾은 아프간은 흥청거렸다. 갑자기 늘어난 자동차와 매연,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콘크리트 빌딩들, 넘쳐나는 달러와 수입상품으로 이른바 전쟁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의 부정적 결과를 신물나게 봐 온 나로선 카불의 흥청거림이 기쁘지 않았다. 시류를 탈 줄 아는 눈치 빠른 몇몇은 곧 부자가 되겠지만 성실하게만 살아온 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허무해 할 것이다. 달러를 뿌려대는 외국인들이 묵는 호텔과 레스토랑 주변에는 몸 파는 여자들이 모여들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시로 올라온 젊은이들은 이룰 수 없는 꿈 때문에 절망할 것이다.

부르카 입고 거리 활보하고, 쇼핑하고, 휴대전화 통화하고…부조화스러운 진풍경 혼란스러워

그나마 나를 설레게 한 것은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었다. 교육과 사회활동은 물론이고 외출조차 힘들었던 탈레반 시절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르카였다. 간혹 얼굴과 몸 전체를 내놓고 다니는 젊은 여인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리는 푸른색 부르카 물결이었다. 비싼 외제차에 앉은 여인도, 그 차 유리창에 달라붙어 구걸하는 여인도, 남편 등 뒤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여인도 모두 부르카를 썼다. 부르카를 쓴 채 현대식 쇼핑몰에서 선글라스를 사고, 부르카 밑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는 여인들…. 아프간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이런 진풍경들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부르카는 여성의 머리와 목이 노출되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 히잡 규정의 아프가니스탄식 변형이다. 아프간의 여성들은 수세기에 걸쳐 부르카를 히잡으로 써 왔지만 부르카가 히잡의 전부는 아니었다. 부르카는 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의 전통이었을 뿐,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아프간에선 색깔과 크기와 모양이 다른 스카프들이 히잡으로 이용됐고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였다. 하지만 이슬람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진정한 이슬람 국가 건설을 외쳤던 탈레반은 부르카를 강제했다. 집을 나서면 모든 여성은 부르카를 써야 했고 그 복장 규정을 어기면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다. 부르카는 탈레반의 비뚤어진 여성정책과 동의어로 여겨지게 되었다.

탈레반의 시대는 갔다. 회초리를 휘두르며 복장 단속을 하던 종교경찰도 사라졌고 2500만 아프간 인구의 52%를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학교가 건설되고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가 주어지고 있다. 현 카르자이 대통령 정부는 3명의 여성을 장관직에 임명했고 헌법은 국회 의석의 25%를 여성에게 할당할 것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프간의 여성들은 부르카를 벗지 않는가? 왜 억압의 상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까?

40대 주부 “부르카 없이 외출하면 마치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기분 들어”

40대 주부 소라야씨. 그에게 부르카는 탈레반의 여성억압정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입어온 부르카는 강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였고 지켜야 할 전통이었다.

“부르카 없이 외출하면 마치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기분이 듭니다”

그에게 부르카는 자유로운 세상이 왔다 해서 간단히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불안도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다. 전쟁은 끝났지만 치안 부재는 여전하고 납치, 강간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부르카는 이런 어지러운 세상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느껴지기 전에는 부르카를 벗지 않을 겁니다”

대학생 파티마의 이야기다.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쉬마. 27세의 그는 오후가 되면 부르카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남성 전용 헬스클럽이 즐비한 마크로리얀 거리가 목적지다. 카불에서 돈 있는 멋쟁이 남자들이 몰려드는 이 거리는 쉬마처럼 짙은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부르카의 여인들로 붐빈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몸 파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거든요”

성매매 죄의식, 아편중독 면피, 성폭력 피하기 위해 부르카를…부르카 벗는 것만이 자유?

행인들은 그녀들을 힐끔거리지만 그녀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덮어쓴 부르카가 익명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부르카를 쓰고 있는 동안은 아무도 그녀들을 알지 못하고 남이 알지 못하는 동안은 죄의식도 수치감도 줄어든다고 쉬마는 털어놓았다.

“부르카를 벗는 순간이 몸을 파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그 순간을 잊기 위해 쉬마는 아편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마약중독자가 되어있다.

초점도 없이 풀어져 버린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나는 아프간 여성과 부르카를 생각했다. 모두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비난했던 부르카가 쉬마에게도 구속이었을까? 오히려 지친 몸을 위로 받는 유일한 피난처는 아닐까?

부르카만 벗으면 모두가 자유로워지리라 믿었던 우리는 얼마나 아프간 사회를 몰랐던가.

» ‘강경란이 만난 지구촌 여성들’의 이제까지의 자료사진들은 모두 ‘코리아포커스’ 조성수 기자에 의해 제공됐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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