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세상은 참 변덕스럽다. 제법 충격적인 사건도 더 새롭고 파괴적인 사건들에 밀려 금세 잊힌다.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개그맨들이 “노예 계약”이라며 분노의 기자 회견을 한 것이, 스마일매니아의 박승대 사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호소의 기자 회견을 한 것이, 연기자노조에서 “문제는 SBSi”라고 뒤늦게 성명을 발표한 것이 까마득히 먼 일처럼 아득하다.

코미디 같은 ‘화해’ 앞에서, SBSi의 거대한 ‘침묵’ 앞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또 다른 뉴스들 앞에서, 그들의 개그를 즐겼던 팬들은 어리둥절했을 뿐이다. 개그맨들은 단지 ‘오해’했을 뿐이고, 박승대 사장은 ‘인간적 대우’를 배려하면 되었을 뿐이고, SBS가 그처럼 ‘중재’했으면 해결될 해프닝이었을 뿐이다. 그새 오간 엄청난 말들은 흥분해서 감정이 섞여 나온 헛말에 불과했다.

그 말들은 ‘취소’되었다. 당사자들끼리 테이블에 마주 앉아 주고받은 말이었다면 ‘취소’는 한결 가벼웠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개그맨들은 사회를 향해서, 통해서, 말을 던졌다. 박승대 사장도 사회를 향해서, 통해서, 말을 던졌다. 소속사 사무실도 아니고, SBS 대기실도 아니고, 신문과 방송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적 발언과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취소’했다.

우리는 통상 이런 ‘취소’를 가장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하는 직업인을 정치인이라고 안다. 선거 때 하는 말과 당선 뒤에 하는 말이 따로 있고, TV에서 하는 말과 정당에서 하는 말이 따로 있다. 정면으로 대치되는 말이 상당수이고 굳이 ‘취소’하는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이 직종의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정치인의 말을 풍자하는 직업을 개그맨이라고 안다.

현역 개그맨들과 선배 개그맨 사장이 보여준 ‘취소’는 그들이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거짓말 선수가 되었음을 예고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거짓말로 넘어가야 하는 어떤 상황과 구조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선언처럼 다가와서 걱정된다. 그들의 개그를 사랑하며 같이 분노하려던 팬들을 일거에 바보로 만들면서 실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바보로 증명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나는 개그맨들이 여타 연예인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다. 동시에 개그맨들이 그 어떤 직종의 연예인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심혈을 쏟아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조금은 안다. 해서 TV의 개그 프로그램과 대학로의 개그 무대가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하는 요즘이 개그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호기라고 내심 반기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개그맨은 다른 선택을 했다. 어쩔 것인가. 변덕스러운 세상이 빨리 잊어주기를 기다릴까. 세상은 잊겠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언젠가 스스로를 다시 폭로하게 될 것이다. 역사의 모든 거짓말이 그랬다. 그토록 말을 우습게 알다니, 정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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