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적성 '묻지마 취업' 내몰린 고령 구직자들

“간호조무사로 35년을 일했어요. 아직은 경제력을 놓고 싶지 않고,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식당 주방일도 나이 제한이 있더군요”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의 고령자인재은행을 위탁 운영하는 (사)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 구인신청을 한 이정임(58)씨는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재취업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98년 IMF 관리체제 당시 278만6000명이던 50대 취업자는 2005년 4월 358만6000명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노동부가 실시하는 실업자재취업훈련과정에 50세 이상의 참여자도 매년 3000여 명을 넘을 만큼 재취업 욕구도 뜨겁다. 그러나 고령 재취업자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대한주부클럽연합회 이재숙 사무처장은 “연 200여 명의 새로운 구직 희망자가 있지만 채용하려는 곳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여성의 경우 가사도우미나 산모도우미 등 단순 노무직에 한정돼 있어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알선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대한은퇴자협회 김선화 간사는 “고학력 퇴직자일수록 사무직을 원하지만 일자리는 거의 없다”며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더라도 몇 달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고령 재취업자들은 “노동강도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실망감이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50세 이상 구직자에게 주어지는 일은 학력과 경력에 관계없이 여성의 경우 가사도우미와 간병인, 남성의 경우 퀵서비스, 경비, 주차요원 등 단순 노무직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이다 보니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 이들은 월 70만∼100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퀵서비스의 경우 월 20만 원 정도만 지급하는 곳도 있다.

지난 4월 29일 실버취업박람회를 주최한 강남구청의 문인하씨는 “참여한 22개 업체 중 대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며 “하루 동안 1500명이 참여했지만 채용이 이뤄진 사람은 80여 명뿐이었고, 이들의 약 30%는 한 달 사이 그만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국영기업체의 부장으로 있다가 명예퇴직한 김상우(55)씨는 2주 전에 아파트 경비원 관리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정규 사무직이고 수습기간이 지나면 월 200만 원의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어 취업 지원 시 1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 그는 “업무에 어려움은 없지만 실무 전문가로서 수십 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그냥 버려진다고 느낄 때 많이 허탈하다”고 털어놓았다.

노동부는 전국의 고용안정센터 산하 고령자인재은행 운영 및 고령자 채용기업에 장려금 지급 등 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한국시니어연합 신용자 대표는 “고령화 사회의 가장 적극적 복지책이 바로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고, 또 새롭게 도전할 만한 틈새 직종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노동부 워크넷(www.work.g

o.kr), 서울시 고령자취업알선센터(www.noinjob.or.kr) 및 각 지자체 취업지원창구 등에서는 고령자 취업알선 및 교육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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