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과 존엄성 무시한 강제적인 부부관계는 범죄
이번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가족제도와 법체계와 맞지 않다”면서 “부부는 서로 성을 요구했을 때 응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폭행죄라면 몰라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편다. 앞 부분에 대해 한 마디 거들자면, 과연 우리나라에 ‘가족제도’라는 것이 있었는가? 만약 있었다면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누구의 가족제도였는가? 우리나라의 현 가족제도는 현실적으로 엄연히 남자들의, 남자들에 의한, 남자들을 위한 가족제도다. 법 개정과 관련하여 그동안 몇 가지 자그마한 변화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아직은 형식적인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가족제도’와 맞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그 밑바탕에 일방적이고 편향된 권리주장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부가 서로 성을 요구했을 때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은 그나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의무라는 것은, 서로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긍정적인 차원에서의 욕구와 욕망이 전제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원하지 않는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황에서 강제성이 동원되는 경우 그것은 폭행의 예비단계에 해당되며, 그것이 다시 성행위로 나아가게 되면 그것은 명백하게 성폭행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하나 더 들어보자면 그들은 “부부강간죄가 악용되면 이혼율 증가 등 가정파괴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한국의 가족이데올로기와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확대해석이다. 물론 이혼율이 증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부부강간죄를 말 그대로 ‘악용’해서 이혼하게 될 경우, 아직은 현실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리한 건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다.
미국에서 부부강간죄는 이혼 소송 중이거나 장기간 별거, 폭력행사에 의한 성행위 등 특수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이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부부강간죄의 부작용을 강조하기보다는 그것의 긍정적인 면들을 부각시켜 도입해야 하는 것이 상황과 순리에 맞다고 본다.
부부 간 성폭력은 부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지금도 시기적으로 많이 늦은 셈이지만, 하루빨리 부부강간죄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부인과 남편의 역할이 바뀐 경우도 범죄에 해당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그것이 개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논의와 더불어 법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