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여중생 상습폭력 아버지 살해사건에 대해

지난 4월 15일 강릉에서 14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중생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A양은 병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이틀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아버지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왔다.

사건 당일에도 A양의 아버지는 밤늦게 술을 먹고 거동도 못 하는 할아버지의 귀를 뚫고, 이를 말리는 A양과 할머니를 욕하며 폭행했다. A양은 아버지를 그대로 두면 예전처럼 또 칼을 들고 죽인다고 난동을 부릴까봐 나일론끈으로 아버지의 손을 뒤로 묶고, 넥타이로 목을 감았다.

가정폭력은 모든 폭력의 근원

이 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언론에서 인터뷰를 하며 공통적으로 가정폭력이 얼마나 심각하냐는 것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일단 화가 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사건은 일 년에 몇 건씩 발생하고 있어 새로운 유형이 아닌데도 그때마다 질문의 내용은 똑같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그 자체로 이미 너무나도 심각한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가정폭력이라도 가정폭력은 모든 폭력의 모형이며 잠재적 근원이 된다. 다른 폭력들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가정폭력은 언제 어디서고 똑같은 양상을 보인다. 안식처라고 생각되는 가장 사적이고 다른 사람이 개입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폭력을 10년, 20년 당하고 산다고 생각해 보라!

선정적 보도행태가 더 큰 문제

이 정도의 폭력이라면 동네사람들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을 것이다. A양 사건은 가정폭력의 전형을 보여준다. A양은 태어나면서부터 폭력을 당하고 살아왔다. 아무도 A양을 도와주지 못했고, 도와주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으나 “돌아가서 아버지가 다시 때리면 그때 다시 오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때 A양은 “결국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A양 고모가 신고하려 했을 때는 할머니가 말렸다. 가족이 폭력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아마도 '아버지니까, 아들이니까'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이웃과 사회의 무관심, 이것이 가정폭력이 심각한 가장 큰 이유다.

더 심각한 것은 방송의 행태다. SBS는 4월 29일 방영된 '세븐데이즈'에서 A양의 어머니를 찾아내 인터뷰를 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히 선정주의다. 여성폭력에 대한 방송의 선정적인 태도는 가정폭력의 심각성보다 더한 심각성이다. 시청자들이 보고싶어 한다는 논리, 그리고 그것을 보고싶어 하는 시청자들 모두가 가정폭력에 무감각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온정 손길보다 재발방지책 절실

이 사건이 네티즌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혹시 A양이 어리고 약한 '여중생'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어느 여성들의 모임에 갔는데, A양이 불쌍하다고 하면서도 “어머니가 가출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겠느냐”며 그 어머니를 비난하는 것을 보았다. 맞은 것이 불쌍하니 돕자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헌법에 근거한 신체자유의 권리와 인권에 관한 문제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성의전화는 '평등가족, 평화마을' 운동을 하고 있다. 가정과 사회가 한 마음으로 생활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작은 폭력부터 없애는 평화의 실천을 하자는 것이다.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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