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카메라로 본 세상

현대인에 대한 이미지의 영향, 이미지의 범람을 너무나 공감가게 피력한 20세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가 몸소 사진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롭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사진작품을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진작품은 이미지에 대한 그의 인식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나의 눈을 단박에 끈 것은 '푼토 피날(Punto Final, 97)' 이다. 이 작품은 거친 질감의 벽면에 보드리야르가 직접 사진을 찍는 장면이 그림자로 비친 것을 포착한 사진이다. 마치 석양처럼 보이는 강렬한 오렌지색의 벽에 비친 보드리야르의 모습은 '그가 사진도 찍어?'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의 작품이 어떨지 몹시 궁금하게 만든다. 이미지를 통해서 인식되는 세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보드리야르는 그의 사진의 대상이 되는 사물을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인식하기를 주문했다. 즉 이미지가 전달하는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어렴풋이 그림자로 비친 보드리야르의 모습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투영하는 듯하다.

'푼토 피날(Punto Final)', 1997, 장 보드리야르, 사진.

이혜진/ 대림미술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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