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너무나 반가운 봄철에 푸른 새싹과 꽃을 즐기니 움츠렸던 인간군(人間群)도 기지개를 켜고 활보하는 것 같다. 예전의 서울은 푸른 하늘이 훤히 시원하게 보였고 집들은 남향으로 지어 겨울에도 햇빛을 즐겼건만 지금은 하늘이 낮다 하고 솟아 오른 빌딩 숲으로 햇빛을 쐬려면 골라서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DNA 복제시대까지 고루고루 눈으로 보아온 우리 세대지만 50년 전의 낭만은, 아니 풍류(風流)는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성균관대 대성전의 두 그루 은행나무는 300년 이상 됐다는, 서울에서도 으뜸 가는 고목(古木)이다. 가을에 맨땅 위에 우수수 떨어져 쌓인 진노란 은행잎 위를 걸어가노라면 너무나 아름다운 은행잎 색상에 두 발은 푹신한 융단 위를 사뿐사뿐 옮겨가는 느낌이었건만 지금의 문명시대에는 아스팔트 위에 은행잎이 떨어지자마자 쓸어 없어지니 깔끔해 보이기는 한다. 그때는 비행기에서 보이는 서울 근교의 붉은 대머리 산들이 바라보기 흉했었고 마음도 아팠는데 지금은 푸른 산으로 탈바꿈되어 북한산, 도봉산 등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제서야 서울이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파리의 세느보다 몇 배 넓은 한강이 흐르고 있어서 세계 어느 수도(首都)보다도 아름다운 산수(山水)에 싸여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니 그동안 너무나 바삐 살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50년 전에 젊은 여성들은 물자도 옷가지도 귀해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를 가져가는 일도 있었건만 지금은 너무나 물자가 흔한 시절로 변했고 GNP도 늘어나니 폐품쓰레기에 파묻힐 지경으로 변하였다고나 할까. 어느 사람은 서양풍이 들어 외출하고 들어오면 옷은 다 벗어 빨아야 해서 수도 사용료가 30만 원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10여 년 전 '디알로그'라는 잡지에 우리나라도 곧 물이 부족해질 나라로 표시된 걸 본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듣기로 사업상 중국의 아주 오지(奧地) 중의 오지에서 1년을 지냈는데 물이 무척 귀한 곳이라 빨래는 고사하고 세수는커녕 이도 닦지 않고 지내야 해서 함께 있으면 냄새가 고약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얘기에 우리는 비록 작은 국토지만 얼마나 산수의 혜택을 받고 살고 있는가에 새삼스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을 다투어 변해 가는 문명시대에 어떻게 자연 훼손을 막으며 생태계(生態系)를 조화롭게 유지해 갈 수 있을까.

이현순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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