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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지역여성운동센터 국장

급식·청소당번 등 아이 볼모한 노동력 착취 끝이 없어

성인지 정책 구호보다 일선 교육현장의 실천이 더 중요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부모 총회에 참석했다. 평일 낮 2시인 탓에 휴가를 내고 참석했는데 학교운영위, 발전위, 학부모모임 등 모든 것이 평일 낮에 이루어지는 탓에 일하는 엄마들은 감히 참여해볼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학교운영의 다양한 영역에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구조화되었지만, 아예 참여 자체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근 학교 급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들이 상충하고 있다. 특히 국가가 어머니들의 노동을 무급으로 착취한다며 학교급식 당번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실 어머니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는 급식뿐 아니라 교실 청소, 환경미화까지 확장되고, 이것은 단지 시간을 내서 노동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교실에 화분이라도 하나 놓기 위해서 학부모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발전기금은 기본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자발성의 원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이 환경미화를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있는 학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이며, 일하는 엄마나 장애인 엄마 등 급식당번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조차 벌금을 내야 하거나 친척 또는 일용직이라도 보내야 하는 현실을 과연 자발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특히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는 아이들에게 '여성은 항상 밥 퍼주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남자아이들은 으레 여성이 하는 일로, 여자아이들은 나중에 자기가 해야 할 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고정적인 성별분업 모델을 교육의 현장에서 그대로 교육하는 꼴이 된다. 국가 정책 전반에 성인지적 관점을 관통시키겠다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교육의 현장에서 일상적 실천을 통해 성평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청소당번, 환경미화 역시 마찬가지다. 교실 바닥에 윤이 나고 화려한 화분이 즐비해야 교실환경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걸 해야 했던 학부모의 부담도 부담이려니와, 이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다른 어머니들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또 그로 인해 우리 아이가 차별 받지 않을까라는 마음의 짐을 갖게 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어설프지만 아이들이 그린 그림, 만든 작품들이 교실을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 것이다.

급식당번 문제는 교육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급식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유급인력을 배치하는 방법을 적극 고려해 내년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100억 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결코 많은 액수는 아니다.

일하는 여성은 점점 늘고 있지만 사회나 교육제도는 여전히 전업주부 위주로 돌아간다. 조금만 더 큰 안경을 끼고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것을 변화시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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