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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화창한 휴일이다. 그러나 늦잠을 잔 뒤라 교외로 나가기에는 무리. 그렇다고 집에 있기는 너무 억울한 날씨다. 어디 보자∼ 평소 가고 싶은 곳을 정리해 두었던 여행지 목록을 들춰본다. 가까이 있어 되려 밀려났던 수연산방이 눈에 퍼뜩 들어온다.

서울 시내에 있으니 거리에 대한 부담도 없고, 휴일이라도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한적한 동네. 높다란 담벼락의 이국적인 집들과 오밀조밀 붙어있는 자그마한 옛날 집들이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성북동. 그 사이 어딘가에 수연산방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월북한 소설가 상허 이태준 선생의 집필공간이던 것을 지금은 그의 후손이 전통 찻집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연산방을 찾은 이들은 유명세에 비해 작은 규모와 그 소박함에 실망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뿐만 아니라 찾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새로 지은 별채와 고택에 어울리지 않는 가요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런 엉성함마저 시골 할머니 집 같은 정겨움으로 다가오니 참 희한하다.

그렇다. 이곳은 세련된 인테리어나 분위기로 승부하는 여느 찻집과는 다르다. 할머니가 쓰시다 방금 물려놓은 듯한 재봉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찍은 빛 바랜 가족사진,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는 직접 담근 송차…손때 묻은 물건 하나 하나에서 오는 향수는 작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또한 수연산방에서 빠지면 서운한 것 하나, 삼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누마루이다. 늘 인기가 많은 곳이라 쉽게 앉을 수는 없지만, 운이 좋거나 혹은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자리이다. 앙증맞은 뜰이 내다보이는 누마루에 앉아 향 좋은 송차를 마시며, 온 몸을 녹일 듯한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인근에는 요정에서 절로 변신해 유명해진 길상사, 소장품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간송미술관,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거처였던 심우장이 몰려있다. 짧은 시간 알차게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이다. 또한 사람들이 다 차를 타고 다녀 걷는 사람도 없다는 성북동 길은 천천히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특별한 계획 없는 주말, 늦잠까지 잤다면 성북동으로 가보자. 라일락이 한창인 5월에는 향기마저 오는 이들을 반겨줄 테니.

문의 : 02-764-1736

영업시간 : 낮 12시∼오후 10시 30분

6인 이상 예약가능, 주차가능, 좌석 50여석

찾아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1111번 버스 이용, 종점 하차 성북2동 동사무소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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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객원기자 jju0@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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