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 최민식 설경구의 서로 다른 울림

소비자 위로용 CF에 대한 단상

해도 해도 되는 것 없는 세상은 사람을 화나게 만들지만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세상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요즘이 그런 시대일까? 체념에 빠져 몸부림조차 포기한 당신에게 위로와 용기를 보내는 CF가 늘고 있다.

김희애는 풀 죽은 남편에게 '캔디' 노래를 부르며 예쁜 격려를 보내고, 최민식은 사업에 좌절한 듯한 친구에게 '젊은 그대'를 불러주면서 웃음을 되찾아주고, 설경구는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부르며 병석의 친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런 격려와 웃음과 희망을 주는 아내와 친구처럼 고객 서비스를 하겠다는 회사들의 이미지 홍보지만 요즘처럼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체념과 무력의 시대에 심신이 지친 시청자들은 잠시나마 따뜻한 기운을 느낄 것도 같다.

한데 이들 CF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본 뒤에 남는 잔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김희애와 최민식과 설경구의 캐릭터가 전하는 이미지의 차이에 따라 내 감성을 감싸는 울림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희애의 예쁜 격려는 너무나 잘 알려진 미모의 여배우가 나의 아내처럼 등장해서 포장마차 앞을 지나칠 때쯤 발랄한 애교를 부리는 장치를 따라 감정 이입을 하도록 만든다. 30대의 평범한 샐러리맨 남편을 대상으로 삼은 이 CF에서 김희애는 내 아내의 이미지를 단숨에 업그레이드하는 대체물로서 선택된 것이다.

이와 달리 최민식의 웃음은 김희애와 마찬가지로 인지도 있는 얼굴을 차용한 것이지만, 인생의 쓴맛과 실패와 좌절을 두루 겪은 듯한, 날마다 슬픔을 삼키면서도 질기게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가는 내 자화상을 바로 최민식의 주름진 얼굴에 대입하게 만든다. 이것이 최민식 캐릭터의 가장 큰 차별성이다.

이에 비하면 설경구의 희망은 불행만 골라서 만나는 것 같은 나와 달리 그럭저럭 평탄하게 잘 살아온 친구가 모처럼 날 찾아와 고맙게도 손을 내미는 느낌을 준다. 뒷모습만 보이는 친구가 병석에 환자복을 입고 앉아 있고 설경구는 단정한 양복 차림에 안정된 미소를 보이는 구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요약하면 내 아내 김희애는 워낙 예쁜 데다가 예쁜 짓까지도 잘 할 줄 아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이고, 좋아라! 그냥 그 순간 좋고 만다. 반면 내 친구 최민식과 설경구는 반대의 자리에서 다가온다. 최민식은 나와 다를 바 없이 고통을 겪어본 사람의 그늘진 미소로 찾아오고, 설경구는 나와 달리 순탄한 삶을 꾸려 가는 친구의 해맑은 미소로 다가온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CF가 늘어난다면, 나는 단연 최민식을 최고의 모델로 꼽을 것 같다. 예쁜 매력이 아니어도 선량한 도움이 아니어도 진정한 위로는 나와 같은 고통의 자리에 서보는 동참이기 때문이다.

김종휘/ 문화평론가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재활용상상놀이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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