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집'이라는 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95년부터였다. '노인의 집'은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 연립주택을 얻어 몇 분의 어르신들이 공동생활을 하시도록 하는 것으로, 양로원과 가정의 중간 형태여서 좋은 점도 많지만 가족 아닌 분들이 모여 생활하려니 이런 저런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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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찍 주무시는 분들은 빨리 불 끄라고 성화를 부리고, 밤잠이 없으신 어르신은 아직 안 자는데 왜 불 끄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신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어르신을 왕따 시키는가 하면, 싸우다 지쳐서 다들 '노인의 집'을 떠나고 결국 한 분만 남아 홀로 살고 계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러니 처음 '노인의 집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뜻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프로그램 참여를 결정했다.

첫 시간, 같은 구(區)의 각기 다른 '노인의 집' 네 곳에서 오신 분들은 할머니 아홉 분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수업 시간에 만나면 나이와 사는 곳을 떠나 평등하게 별칭을 부르기로 하고는 별칭 짓기에 나섰다. 가장 좋아하는 꽃이나 과일, 동물 같은 것으로 하시면 된다고 했는데, 맨 처음 할머니가 '배'라고 하니 다들 사과, 딸기 등 과일로만 별칭을 지으신다. 그런데 다섯 번째 할머니가 한참 고민을 하시더니 하시는 말씀. “어쩌지? 나는 과일이라면 다 좋아하는데…”. 천천히 생각해 보시라고 하면서 잠시 더 기다리니, 무릎을 탁 치신다. “과일 다 넣고 만드는 사라다(샐러드)하면 되겠다. 사라다!” 결국 다른 분들과의 균형(?)을 고려해 복숭아로 바꾸긴 하셨지만, 덕분에 교실 안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과일을 그려 넣어 만든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는 앞으로 여덟 번 만나게 될 이 교실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정리된 규칙은 모두 여섯 가지였다. '빠지지 말기! 한 사람만 이야기 하지 말고, 돌아가며 이야기 하기!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잘 듣고, 끝까지 듣기! 왕따 시키지 않기! 이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른 곳에 전하지 않기! 내가 먼저 인사하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들과 같이 정한 규칙 여섯 가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니 그 어느 집단에서 정한 규칙보다 훌륭했다. 글자를 읽고 쓸 줄도 모르고 가족이 아닌 다른 노인들과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그래서 불만과 분노와 짜증이 차있는 어르신들이지만, 가슴에는 누구 못지않은 사랑과 배려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위의 여섯 가지 규칙을 잘 지킨다면 '노인의 집' 아니라 그 어디라도 '행복한 집'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흘 후에 나는 또 다시 배, 사과, 딸기, 바나나, 참외, 토마토, 감, 수박 그리고 사라다(복숭아)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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