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납골당이니 쓰레기 소각장을 왜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시설들인데, 말부터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니 사람들이 더 혐오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어디 좋은 말 없을까요?

그야말로 전 국민이 노리고 있는 듯한 판교에 납골당과 쓰레기 소각장 등 이른바 혐오시설을 짓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관심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그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히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한다.

내가 그 뉴스를 들은 장소는 시내버스 속이었는데 정식 뉴스 시간이 아니라 주부를 주 청취 대상으로 하여 시시콜콜한 사연과 음악을 내보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였다.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던 나를 깨운 건 여성 진행자의 정곡을 찌르는 멘트 몇 마디였다.

“아니, 납골당이니 쓰레기 소각장을 왜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시설들인데, 말부터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니 사람들이 더 혐오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어디 좋은 말 없을까요?”

옳거니. 어쩜 그렇게 내 생각하고 똑같을까. 예쁘기도 하지. 말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통제하기도 한다. 그런 시설들을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도 현실이지만 혐오 시설이란 말 바로 그것 때문에 그런 시설을 혐오하게 되는 것도 현실이니까. 혐오시설이라고 명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혐오하지 않는다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

문제는 비단 납골당이나 쓰레기 소각장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시설이나 장애인 학교, 노숙자 쉼터, 노인 요양원 그리고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까지 혐오시설이라고 쉽게 불린다. 주민들이 자신의 동네에 이런 시설들을 세우는 걸 죽어라 하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내세우는 핑계야 어떻든 그런 시설을 혐오하는 이유는 아마 '추한 것, 모자란 것은 모두 보기 싫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편협한 이기심 때문이었을 게다. 덧붙여 좋은 것만 보고 자라도 아까울 내 아이가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면 좋을 게 뭐냐는 끔찍한 자식사랑도 앞섰겠지.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는 노골적으로 경제적인 논리로 돌아선 것 같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동네에 그런 시설이 들어오면 땅값 집값이 떨어질 게 뻔하니 절대로 안돼! 도의적으로는 어느 정도 미안하긴 하지만 당장 내가 경제적으로 손실을 입으니 어쩔 수 없어. 나를 욕하지 마, 입장이 바뀌면 너희들도 그럴 테니까.

몇 해 전 우리 동네서 멀지 않은 산자락에 대규모 납골당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적이 있었다. 주민은 물론이고 구의회까지 난리가 났다. 하긴 주민이 반대하는데 구의회가 찬성할 리 없지. 그게 다 표밭인데.

당시 우리 반상회에서도 모두들 결사적으로 저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고맙게도 아주 간혹 조심스럽게 다른 의견을 내는 이도 있었다. 꼭 필요한 시설인데 다들 반대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디 화성(경기도 화성이 아님)에나 지어야겠네요. 그러자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왜 하필 우리 동네냐. 납골당이 들어서면 공기가 오염되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된다고들 했다. 그렇다면 공기가 오염되지 않도록 감시 감독을 철저히 하면 되지 않으냐는 반론에 이내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아파트 값 떨어지면 어떻게 해!

이참에 정부에 제안 하나. 이왕 혐오시설로 판교 열기를 식히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하는 김에 화끈하게 하라고. 납골당이나 쓰레기 소각장뿐만 아니라 장애인 학교, 노인 요양원, 노숙자 쉼터 등 이른바 사람들이 '혐오'하는 시설들을 제일 좋은 위치에 고루고루 왕창 들여놓으라는 말이다. 팔아먹을 땅에서 조금만 떼어 내면 되잖아. 어차피 엄청나게 남는 장사라며.

그러다가 미분양 사태가 일어나면 낭패라고? 아이고, 걱정일랑 붙들어 매셔. 교통 좋고 값 적당하면 들어가겠단 사람은 차고 넘칠 테니. 없던 혐오시설이 들어서면 결사반대하겠지만 미리 자리 잡은 혐오시설인데 그걸 혐오해서 안 들어간다면 손해 보는 이는 누구겠어?

그리고 말야, 처음부터 그렇게 소외된 이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그들을 '혐오'하는 대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 나가겠지 뭐. 우린 또 한다면 하는 민족이잖아. 아, 그 철통 같던 호주제 폐지된 거 좀 보라고. 혐오시설이란 말 깨끗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일걸.

그러고 보니 정부에서 세운 계획, 처음엔 '궁여지책'으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최선책'이 될 수도 있겠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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