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조각가 윤영자씨 사재털어 마련국내 유일 여성 미술인 격려

미술상갤러리 숨에서 3월29일까지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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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소재를 작품 속에 끌어들인 유리지씨의 '골호'(왼쪽)와 장진씨의 색채미학과 조형적 실험이 돋보이는 '연탄시리즈'(오른쪽).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 미술인이 제정한 여성 미술인을 위한 '석주미술상'. 이를 기념한 전시회가 인사동 쌈지길 안에 있는 갤러리 숨에서 3월 29일까지 열린다.

석주미술상은 우리나라 원로 여성 조각가 석주 윤영자(81·예술원 회원)씨가 90년 석주문화재단을 설립한 뒤 매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후배 여성 미술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상을 제정한 이후로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니 올해로 16회를 맞이했다. 16번째 석주미술상 수상자는 금속공예가 유리지(59·서울대 미대 교수)씨와 도예가 장진(54·경희대 예술디자인대 교수)씨. 이들은 탁월한 재능과 참신한 창의력으로 우리나라 미술계를 이끌어 온 공이 인정돼 수상하게 됐다.

공예 모더니즘 1세대, 금속공예가 유리지

우리나라 공예의 모더니즘 1세대로 꼽히는 금속공예가 유리지씨는 2002년 그간 터부시되어 왔던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끌어낸 기물(골호, 유물함, 상여 등)을 전시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아름다운 삶의 한 형식'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유씨는 기존의 미학보다는 역사학적, 민속학적 접근을 통해 삶에 복귀하는 작품세계를 드러내는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그는 돌, 나무 등의 소재를 사용해 망자의 길동무가 될 골호, 촛대, 상여 등을 창작해 냈으며 여기에 전통 건축양식에서 볼 수 있는 잡상(雜像), 구름문 장식의 금속세공을 더해 새로운 미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유씨는 “죽음도 삶의 아름다운 형식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창작의도를 밝힌 바 있다. 유리지씨의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자연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순수미술 지향성이 강한 '섬풍경' '호수산책' '바람여행' 등이 있다.

생활 도자기 예술 개척해 온 도예가 장진

여성의 섬세함과 개성 있는 색채의 마술사로 평가받는 도예가 장진씨는 지난 30여년간 생활 속의 예술로 도자기를 빚어왔다. 도예가로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장인적 기술(물레성형과 판작업, 유약과 소성 등)과 현대도예의 조형성을 모두 갖춘 그는 추상표현주의에 심취해 도예의 틀을 벗어난 조형적 실험을 하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89년 작품 중 포스트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한 왜곡된 얼굴, 비뚤어진 코, 짙게 칠해진 입술 등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남녀반신상으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장씨는 최근 7∼8년간 본격적인 생활도자기 작품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여름 폴란드의 도요지 볼레스바비에치에 머무르며 제작한 '풀내음'(2004) 연작은 흙의 원초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순수조형의 미적 탐구와 개념에 대한 모색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석주미술상 제정한 윤영자는?

여성작가 1세대로 50여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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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성 조각가 1세대인 석주 윤영자(81·예술원 회원)씨는 1949년 국전 입선으로 국내 미술계에 데뷔했다. 당시 우리 조각계에는 여성 조각가가 전무했으니 여성 조각계의 선구자로 불릴 만하다. 초창기 화강암이나 대리석 등 석조작업을 거쳐 70년대 이후 브론즈와 스테인리스 등으로 표현의 폭을 넓혀갔다. 55년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로 활약했다. 50여년이 넘는 작품생활 동안 윤씨가 일관해온 주제는 '인간에 대한 사랑'.

조각가로서뿐 아니라 미술교육자, 문화사업가로도 선도적 역할을 했던 그가 90년 사재를 털어 석주문화재단을 설립, 후배 미술인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상이 바로 석주미술상이다. 석주미술상은 90년부터 매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성 미술인에게 주어지고 있다.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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