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카메라로 크로스오버 작업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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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조종사 탑건이 꿈이라는 미국 청년의 꿈을 이뤄준 사진 앞에 작업 슬라이드를 들고 선 미술작가 정연두. <이기태 기자 leephoto@>

180㎝가 넘는 키, 늘씬한 다리, 뛰어난 패션 감각, 손님에게 직접 카푸치노를 끓여내는 자상함. 이렇게 멋진 남자가 스무평 남짓한 아틀리에에서 타인의 꿈을 실현해 주는 작업을 한다면 그 누구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텅 빈 듯 하지만 곳곳에 그의 작업 오브제들과 작품들이 자리잡은 회색 공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게다가 위치한 곳조차 예술인마을이라니!

“작업실이 너무 지저분하고 아무 것도 없죠? 조만간 공사에 들어갈 거예요. 칸막이도 좀 치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도 내겐 없어선 안될 공간이죠. 밖에 나가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시간보다 여기서 작품 구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까요”

미술작가 정연두(35)는 94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런던으로 건너가 골드스미스컬리지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했다. 그가 사진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다.

“런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낡은 건물 옥상에 빨간 종이 수백장을 깔아놓고 비가 내리길 기다렸어요. 날씨를 주제로 작업한 거였는데 그 과정을 기록하려고 카메라를 들었던 거죠. 나중에 보니 기록용으로 찍은 사진이 근사한 작품인 거예요. 그래서 카메라를 표면매체로 쓰게 됐죠”

그러고 보니 '질주'(98)를 비롯해 '도쿄브랜드시티'(2002) '상록타워'(2003), 연작시리즈 '내 사랑 지니' '앨리스 인 원더랜드' 등 거의 모든 작품이 사진이라는 결과물로 창조됐다. 그렇다면 미술작가 정연두는 미술작가가 아니라 사진가가 아닌가?

“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세요? 장르 간 경계를 허물어버린 거예요. 그건 왜냐하면 가장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어떻게 사물을, 세상을 바라고 이미지 언어로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사유과정이 중요해진 거예요. 내 작업도 결과물은 사진이지만 한 장의 사진이 나오기까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작업기간이 더 중요하지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준비과정이 사진 찍는 것의 스무 배 정도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고 또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는 준비과정의 스무 배 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단다. 어른들의 소망을 실현시켜준 '내 사랑 지니'에서는 배스킨라빈스 소녀를 눈이 오길 기다려 눈 덮인 하얀 산 속에서 근사한 에스키모 소녀로 만들어줬고, 아이들의 꿈을 현실화시켜준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서 그는 몇 달 동안 실제 유치원 3곳을 돌며 (거의 자원봉사로) 임시 미술교사로 아이들 세계로 들어갔었다. 참, 그러고 보면 정연두는 뭔가 사람 홀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그의 작업에 끌어들였으니 말이다.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모든 사람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잖아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자기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저, 사람 꼬시는 재주 별로 없어요”

진짜 그럴까? 이번에는 베니스 비엔날레다. 정연두는 6월 12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리는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꾸밀 15명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참가한다.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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