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보통 사람이라면 그 탁월한 재테크 능력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함께 받게 했을 그 부동산, 그러나 꽤 잘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부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그 부동산, 과연 부동산은 힘이 세네, 그렇지 않아?

과연 부동산이군.

재테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고위 공직자의 재산 증식 현황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에야 몇 억대 심지어는 몇 십억대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봉급쟁이들은 푼돈 모아 부자 되기가 아주 어렵다. 일단 종자돈이 마련되면 금리 낮은 은행에 넣어 두는 대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부동산을 사서 적절한 시기에 파는 사람들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너 나 없이 가난하게 출발한 우리 또래들 중에도 30년이 지난 후 부자 소리 듣는 친구들을 보면 어김없이 일찍부터 부동산에 밝았던 이들이다. 70년대 초부터 '복부인'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내며 아파트를 몇 채씩 샀다 팔았다 하거나 이른바 '딱지 장사'를 하기 위해 지방원정대를 조직한 이들, '빨간 바지'는 안 입었지만 개발정보를 따라 전국을 누빈 이들이 대부분 우리 또래 아줌마들이었다.

당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나 같은 아줌마는 겉으로는 불로소득이라느니 경제정의에 어긋난다느니 욕을 해댔지만 속으로는 너무 부러워서 배가 아팠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봉급을 안겨주는 남편에게 실없이 바가지를 긁어대기도 했다. 쪼끔만 더 벌어 와라, 이 뛰어난 머리로 천 배는 불려 줄 테니. 하지만 복부인의 3요소라 할 정보와 배짱, 그리고 부지런함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못한 내가 여윳돈이 생긴다 한들 실전에 나갈 엄두나 낼 수 있었으랴. 차라리 돈이 없길 다행이지.

지금 막 생각난 건데, 복부인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한창이었을 당시 한 신문사에서 '주부의 입장에서 본 복부인'에 대해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왔었다.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을 쏟아내면서 도덕적 잣대로 그들을 신나게 욕해 주기를 바랐던 모양인데 나는 '그렇게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은 제도 자체에 잘못이 있지 눈치 빠르고 발 빠른 여자들이 무슨 죄냐, 나도 그들 만한 욕심과 능력이 있었다면 복부인으로 나섰을 거다라는 식으로 글을 썼다. 삐딱하게. 결국 글은 안 실렸다.

부동산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부자가 되고 안 되고가 달려 있는 이 나라에선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도 도무지 부동산에 신경을 끄고 살 수가 없다. 조금 넓은 집으로 옮기겠다는 목적에 단순한 계산으로 섣불리 이사했다가는 자칫하면 큰 손해를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는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몇 억대를 놓친 사람들이 여럿이다. 거꾸로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큰돈을 번 이들도 그만큼 되겠지. 이 모두 운수소관으로 돌려야 할까.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한동안 '김밥 할머니'들의 선행이 줄을 이어 보도된 적이 있다. 일생 동안 김밥 장사를 하면서 안 입고 안 먹어 가면서 모은 돈을 대부분 대학에 기부하신 분들의 이야기이다. 여성운동을 하는 입장에서야 할머니들이 그 돈을 모두 후배 여성을 위해서 쓰시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지만, 아마 그 분들로선 '여자라서'라는 한보다 '못 배워서'라는 한이 더 크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긴 여성운동이 그 분들을 위해 기여한 일도 없지만.

그런데 평생 같은 김밥 장사를 했어도 그 분들이 기증한 돈은 액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어떤 분은 몇 천 만원 정도인가 하면 어떤 분은 수십억 원에 이른다. 김밥의 맛이나 장사수완에 차이가 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부동산을 사두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거다. 어느 정도 목돈이 되었을 때 시장 귀퉁이에 사둔 조그만 가게가, 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골 땅을 사둔 것이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황금알로 변한 거다. 그 분들의 기사를 꼼꼼히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동산의 힘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건 그렇고 뜬금없이 웬 부동산 타령이냐고? 뜬금없기는. 투기의혹을 일으킨 경제부총리가 드디어 물러났다는 뉴스를 접하는 순간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란 과연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 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그 탁월한 재테크 능력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함께 받게 했을 그 부동산, 그러나 꽤 잘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부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그 부동산, 과연 부동산은 힘이 세네,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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