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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안경은 왜 쓰셨수?

1번은 신경질적으로 냅다 소리 지른다.

보면 몰루? 눈이 나쁘니까 썼지, 쓰긴 왜 써?

2번은 화사사 웃으며 대답한다.

더∼ 잘 보려고요!

어떤 숙제가 눈앞에 펼쳐지면 우선 인상부터 구기고 투덜투덜하는 사람이 있다.

되겠어?

그러나 반대로 방긋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 안돼?

그렇다. 역사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개척하고 만들어 간다.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43세의 이은화씨도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개척해 가는 사람이다.

남편은 볼링핀을 제조하던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부도가 나자 그녀는 속옷가게를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악화로 하루 수입이 1만원 이내. 전기, 가스, 전화가 모두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전기요금 남부최종기한이 지난주였어요. 이미 3개월 치가 밀려있는 상황이라 며칠 안에 처리하지 못 하면 불도 켜지 못한 채 장사할 판이었죠. 도시가스는 이미 지난달에 끊긴 상태고요. 가게 전화도 발신이 정지된 상태라 금방 해지될 위기였어요.

이번 주부터는 엄청 추워진다는데 애들은 어떻게 재우나…카드체크기도 곧 멈출텐데 혹시 카드로 물건을 사려는 손님이 오면 어쩌나…막막한 상황에 가슴만 답답해졌어요. 담당자를 찾아가 사정을 하고 열흘 후에 납부하라는 조건으로 가스를 다시 연결하고…그러면서 제 심정을 인터넷에 올렸어요. 글을 쓰다 보니 답답하던 마음이 담담해지면서 객관적으로 저를 바라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의 현실에 동참해 주시고…5일 만에 원고료 500만원을 모아주셨어요. 저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그렇다. 그 500만원은 그냥 돈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에 수혈을 해준 피 같은 돈이다. 그녀가 만약 그 순간 절망으로 무너져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족은 물론 그녀 자신도 '제로지점'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기적'이라는 영화를 생각했다.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면 그 '환상의 동그라미, 환상의 트라이앵글'이 세상을 거짓말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가던 영화. 엽기적인 사건만 일어나는 슬픈 세상이 아니라 기적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절망의 가슴속에서 힘겹게 퍼 올린 희망의 몸짓 하나가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힘을 발견하게 해준 작은 감동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의 격려로 다시 일어난 그녀는 자신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웃는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그녀가 체험한 사랑의 온도는 몇 도쯤일까?

그녀는 '되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왜 안돼?'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발음해 내는 '따뜻함' 이라는 단어 속에서 파란색 희망과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최윤희 /

방송인·칼럼니스트 baboza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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