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순

국회 여성위원회 입법심의관

20세기 초반 산아제한 운동가인 마거릿 생어와 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공통점은? 굉장히 다를 것 같은 이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공통점은 그들 모두 여성의 몸의 자유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거릿 생어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에서 여성이 임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 준 사람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피임 정보를 주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여성들에게 피임을 통한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온 생애를 다 바친 인물이다. 이후 여성의 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는 미국에서 임신중절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도 핫 이슈가 되고 있다. 아마르티아 센은 여성의 몸의 자유의 문제에 대해 감탄할 만한 통찰력을 보여 준다. 센은 인간 사회에서 평등의 문제를 기본적 자유의 분배 문제로 다루면서 일례로 임신한 여성의 몸의 자유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임신한 여성이 갖는 상대적인 몸의 부자유를 기본적 자유의 크기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정책적으로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최근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분분하다. 출산장려정책은 이미 시작돼서 지방자치단체 별로 예산을 통해 출산수당을 주거나, 둘째 자녀에 대한 보육료 추가지원에서 나아가 셋째 자녀 보육료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출산이나 자녀 수에 따른 세금 공제를 강화하거나 새롭게 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더하여 국가가 주도해 온 보건소의 피임시술 규정을 삭제하거나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을 고취하기 위해 '임신부의 날'을 제정하자는 안까지 나온 상태이다.

그러나 정작 염려되는 것은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과연 여성의 몸에 대해 어떠한 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사회가 보다 많은 관심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단, 그것은 여성 스스로의 결정이 전제되었을 때만 그러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한 번도 여성의 몸의 자기결정권 혹은 선택권의 문제에 대한 대중적인 논의를 거쳐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여성의 몸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한 지금의 출산장려정책이 지난 시절 인구 감소를 위한 가족계획정책과 동일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출산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이전에 임신과 출산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가진 자기결정 사항임이 정책적으로 인지돼야 한다. 또한 임신하고 출산하는 몸이 사회에서 차별이나 제약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충분한 문화적 태도와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저출산 대책은 단지 출산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의 선택권 문제를 인지하고 출산을 원하는 사람들이 실제 출산을 선택하는 데 제약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여성의 몸의 권리 개념 위에 기초해야 한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존중의 개념이 빠진 출산장려대책은 여성정책의 방향과 상반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회 각 분야에 여성 1호가 신문지면을 심심찮게 장식하는 요즘, 출산장려정책을 보면서 수전 팔루디의 'Backlash'(거센 반발)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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