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5년째 장수하며 중장년층 위주로 진행되는 KBS 1TV의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당시의 충격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바로 두 명의 여성 참가자 때문이었다. 그들은 당차고 발랄하며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매스미디어에서 유포하는 '섹시'아니면 '청순가련'일색인 고리타분한 이분법적인 여성상에 질려있던 나는 이런 건강한 젊은 여성들의 '정제되지 않은 실제 모습 그대로'를 TV에서 볼 수 있어서 유쾌했다.
정작 재미있는 상황은 이러한 '못말리는 두 아가씨'를 사회자가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두 여성은 모두 덩치가 컸고, 전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전혀 여성스럽지' 않았다. 중장년층 위주로 채워진 방청석도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배꼽티를 입은 한 여성에게 사회자가 장기가 뭐냐고 묻자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어요”라며 '충격적'인 발언을 했고, 온 몸을 무대바닥에 찰싹 붙이고 기어가는 굼벵이 춤을 추기까지 했다.
나는 이 두 여성의 대담한 자기 표현이 단지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 하는 몇몇 참가자의 '개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두 여성을 본 후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표출하는 장의 부족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연예인이 일반인과 구분되는 지점이 어디인가? 그것은 특이함, 평범하지 않음이다. 이 두 여성을 통해 보았듯 일반인과 연예인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는 현상은, 일반인들의 자기표현의 욕구가 그만큼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개인들의 넘치는 자기표현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표현의 의지로 충만한 젊은이들이 전국노래자랑이라는, 다분히 중장년층 지향적인 프로그램에 출현하고 있는 현실을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장을 얼마나 제한적으로 경험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한다.
정필주 /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