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주는 네트워크가 '백신'

전문가 “계속되는 삶의 무기력증 공동체 통해 치유해야”

주부 김현미(38·노원구 상계동)씨는 3년 전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회사 일로 귀가가 늦은 남편과는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고, 시댁 식구들과의 불화로 잦은 다툼이 생기자 며느리로서의 정체감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의욕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멀리하게 됐던 김씨는 이제서야 그 때 자신이 우울증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직장인 최영미(33·경기도 수원시)씨는 일찌감치 신경정신과를 찾은 경우. 회사 생활 4년째 된 최씨는 최근 들어 수면장애와 무기력감, 건망증에 시달리자 자신이 우울증이 아닌가 의심하다 병원을 찾게 됐다. 최씨는 “사람들을 만나기 싫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 직장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토로한다.

최근 연예인 이은주씨의 자살 원인이 '우울증'으로 밝혀지면서 우울증의 치명적 폐해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우울증을 겪지만 인식하지 못 한 채 방치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가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우울증은 일명 '마음의 감기'라 불릴 만큼 흔한 질환으로, 우리나라 전체 성인의 10∼20%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우울증의 평균 발병 연령은 20대 중반으로 최근 들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의 요인을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으로 분류하는데,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중추신경계에서 세로토닌 또는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생화학 물질이 감소해서 우울증이 생긴다고 한다. 정신분석적으로는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때 주로 나타나며 어릴 때 겪은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다고도 한다. 특히 심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15%가 자살을 하며 55세 이상의 우울증 환자는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4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신체적 질환 특히 심장질환, 당뇨병, 고혈압, 신질환, 기타 만성적인 신체질환의 경우 우울증이 동반되기 쉽기 때문에 조기에 진단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울증 발병률은 특히 남성이 5∼12%, 여성이 10∼25%로,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남성보다 여성이 1.5∼2.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전체 여성 인구의 25%가 우울증 환자라며 가임 기간과 맞물려 산후우울증, 폐경기우울증, 빈둥지 증후군, 고부 갈등으로 인한 우울증 등 우울증 유병률이 급속히 높아진다고 분석한다. 이에 대해 김상준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우울 인자의 네 번째가 여성일 만큼 우울증과 여성은 긴밀하다”며 “우울증에 관한 여러 가지 편견을 버리고 빨리 병원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선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이 여성들에게 독특하게 발생하는 측면을 분석하기도 한다. 현혜순 여성상담센터 소장은 “가정폭력, 성폭력 등으로 많은 여성들이 우울증을 겪지만 이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구조적으로 여성은 다 우울하다”며 “이는 여성으로서 선택권이 없고 사회 생활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오는 우울증”이라고 분석했다. 현 소장은 “우울증을 겪는 여성은 혼자 헤쳐 나가기보다 공동체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이를 발판 삼아 삶의 의욕을 찾아 나가야 한다”며 “'나'를 인정해 주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친년 프로젝트'를 통해 거식증, 불안, 두려움 등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의 우울증을 조명했던 사진작가 박영숙씨는 “우울증은 나란 존재가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찾아온다”며 “자기의 경험, 고통을 직시하는 순간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임인숙 기자isim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