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누구 좋은 일 해볼 사람 없소? 연애에 소질이 없는 전국의 보통 젊은이들이 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순전히 시민운동 차원에서

단골은행(요즘은 주거래은행이라고들 하지만)에 아주 호감 가는 여성이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야 일단 자신에게 친절하게 굴면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이지만 사람관계라는 게 워낙 미묘한 것이라서 친절하다고 해서 무조건 호감이 가는 것도 아니다. 어떨 땐 친절이 오히려 정떨어지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니깐.(에고, 고달픈 인생살이!)

늘 밝은 표정에 일 처리도 빠른 데다 화제를 끌어내는 솜씨도 뛰어나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유쾌해지는 사람인데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듯 보였다. 조신해졌다고 할까, 기가 빠졌다 할까 아무튼 어딘지 모르게 처져 보이는 느낌이었다.

내 딴에는 쿨해 보이려고 용을 쓰는 탓인지, 아니면 천성이 매몰차서 그런지 나는 상대방의 사생활에 대해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만난 지 10년이 되어가는 내 단골 출판기획자가 어느 학교출신인지 아직도 모를까.(이런 태도가 여성들의 일반적인 속성인지 아니면 내 성격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 그가 새해 인사로 나의 금년 계획을 묻기에 나도 답례 삼아 똑같은 걸 물었다. 그래, 이 과장은 올해 뭘 하고 싶어요? 그러자 그는 결혼을 하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난 내가 그의 나이를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이 든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 역시 나보다 한참 젊은 사람들의 나이는 영 헷갈린다. 고백하건대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는 그냥 대충 비슷하게 보인다.

워낙 앳돼 보이는 얼굴이라 기껏해야 스물 일곱 여덟이려니 했던 그는 올해로 서른 넷이 되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둘러보니 결혼할 남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갑자기 행동반경을 넓혀 남자들을 헌팅하러 다닐 재주도 없으니 아무래도 그냥 혼자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그는 체념 섞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흥분했다. 결혼을 안 하기로 했다면 몰라도 하고는 싶은데 못해서 안하다니 말도 안 된다.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야지 그렇게 쉽게 주저앉으면 어떻게 하느냐. 정말 결혼하고 싶다면 당장 결혼중개업소에 등록부터 해라. 난 잘 모르지만 이름 난 곳 몇 군데 있잖으냐.

이번엔 그가 놀랐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것 같아서 망설였단다. 더구나 나 같은 사람(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은 절대로 그딴 짓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나.

젊은 시절엔 나도 그랬다. 부모세대라면 몰라도 우리 세대에서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어떻게 중매로 결혼을 하느냐고. 모든 중매결혼은 정략결혼이고 연애결혼만이 순수한 사랑의 결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상을 모르면 무슨 말을 못하나, 참 철도 없었지.

뭐, 권력 잡는 사람만 변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도 변하는 법이다. 사는 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갈수록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좁았던 마음이 조금씩 넓어간다. 그게 사는 재미지.

운명적인 사랑? 그거 좋지. 그런데, 첫눈에 필이 꽂히는 것도 일단 사람을 만나야 가능한 거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란 한줌도 안 된다. 게다가 주위에서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해주던 미덕도 점점 사라져간다. 나 살기도 고달픈데 언제 주위사람까지 신경쓸까나. 며칠 전 어떤 일간지의 독자투고란에서 읽었던 한 노처녀(필자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의 글은 주위의 무관심한 반응에 대한 절절한 고발이었다. 그는 정부가 아무 효용 없는 출산대책을 세우기 전에 전국의 노처녀 노총각의 애로사항을 헤아려 달라고 외쳤다.

소위 명품 신랑·신부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전히 그 위세를 자랑하는 뚜 마담의 명부에 확실히 올라 있으니까. 그들만의 리그는 영원하겠지. 왜 그렇게 꼬느냐고? 혹시 배 아픈 것 아니냐고? 원, 별말씀을. 전 남 잘되는 것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이 과장에게 적극 권유하긴 했지만 기존의 결혼중개업소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다. 하긴 돈을 벌기 위한 사업체이지 자선활동이 아니니깐.

그래서 여기서 제안 하나 하고 싶다. 누구 좋은 일 해볼 사람 없소? 연애에 소질이 없는 전국의 보통 젊은이들이 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순전히 시민운동 차원에서.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