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최초의 일간지 여사장을 지냈던 언론인 장명수 씨에게서는 늘 '업무의 체취'가 진하게 느껴졌다. 성공한 여자들 특유의 '공주 기(氣)'가 전혀 없는 여성리더 장명수의 소박함 속에는 여성 리더십에서 주목하는 가치들이 체화되어 있다.

“성공했다? 살아남았다? 아니 오래 붙어 있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이렇게 잡고 있다. 43년간의 언론인 경력 끝에 후배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한 마디로 하자면 “버티자”라는 것이다.

장명수 씨가 걸어온 길은 단지 언론인만이 아니라 여자가 희소가치를 가지는 조직 속에서 여성들이 적응하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의 기록이다. 그 과정에서 주류문화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약자들이 꿈과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고 어떻게 자기관리를 해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장명수의 여기자 생활은 “창경원이 여기자들의 유일한 출입처”였다는 시절이다. “창경원 곰이 새끼를 낳았다” “오늘은 한 마리 더 낳았다”라는 기사나 “올 봄에는 꽃무늬 벽지가 유행이라더라”라는 생활기사를 쓰는 여기자들이 실세 라인에 포함될리는 만무. 여기자 장명수는 예정된 찬밥의 운명선을 따라 동기 부장 모시기, 후배 국장 모시기 등 남자라면 상상할 수 없는 천형의 직장생활을 하루하루 버텨가야 했다. 남자 후배 국장 5명을 모셔야 했다는 부국장 9년 시절을 가리켜 그는 “일제 36년보다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사표를 썼다, 버렸다 반복하면서 하루하루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면서 여기자 칼럼을 시작했고, '전문성이 없다'는 그 상투적 협박 속에서 “상식의 힘” “비주류의 힘” “여자의 힘” “나 자신만의 힘”에 의지해 버텨낸 43년이 장명수 리더십의 내용이다.

성공한 여자들의 장애인 엘리트주의, 이기주의를 넘어서 그는 “나는 당연히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성차별주의의 구조를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라고 할 때, 그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적절하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자'는 말로 자매애의 역사의식을 말하고 있는 여성 언론인 장명수. 천신만고 끝에 자수성가 독학으로 경지에 이른 그는 확신한다. “정해진 리더십은 없다. 누구나 자기다운 방식으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그의 버티기 내공 43년 결산서에서 '관점의 전환이 실력'이라고 밝힌다. 차별과 소외의 경험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버티면서 오히려 찬밥의 위대함과 약자의 내공을 확신하게 된 그는 소중한 여성 리더로 기억될 것이다. 관점의 전환이란 결국 이 시대 여성들에게는 대단한 희망의 빛을 뜻한다. 지금 현재 구질구질 하고 무력한 것 같아도, 정도로 성실하게 꿈을 버리지 않고 힘을 키워나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된다.

여성 리더로서 장명수는 홍일점 시대의 여성 성공시대의 결산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여성 리더가 보편화되는 미래사회를 맞아 여성들의 '버티기 전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언어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버팀목이 되어준 기초를 바탕으로 '미래의 장명수'들은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될 것이다. 혹시 '즐겨라' '튀어라'라는 등의 주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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