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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크리스마스 아침,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 울듯이 달려와 내게 하소연했다. 아니야, 저기 있네. 트리 밑에 있잖아 했지만 아이들은 “뭐?” 하며 반문한다. 남편과 내가 아이들 몰래 준비한 선물을 내밀자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지고 만다. 실망의 빛이 역력한 둘째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지난해 형이 받은 커다란 자동차를 소원으로 빌었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남편과 나는 정형화되고 폭력적인 플라스틱 장난감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두 녀석이 점점 총이나 칼, 로봇을 선호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장난감' 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기도 했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정한 날 대형 할인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들과 그 뒤에 숨어있는 계산된 상업화 전략들에 질려버린 탓도 크고 총과 칼을 가지고 놀면서 죽음과 전쟁에 대해 쉽게 언급하는 것들이 영 편히 넘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아이들의 놀잇감이다. 아이들은 플라스틱 장난감이 없어도 돌멩이와 흙, 나뭇가지, 조게 껍데기들을 가지고도 하루 종일 심심해하지 않는다. 산에서 주워온 솔방울과 보슬보슬 털실도 훌륭한 놀잇감이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큰다. 아이들에게 총과 칼, 싸움이 주업인 로봇과 예쁜 치장이 주업인 인형을 안겨주며 심심해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과 허영이다. 부모로서의 욕심, 돈에 익숙한 허영심.

생각은 이랬지만, 아이들은 매장에서 보았던 장난감을 잊지 못했다. 난감해하는 내게 주위 엄마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이랬다. 아이들에게 선물은 꼭 필요한 것을 받는 날이지 장난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기. 자기가 갖고 싶었던 선물을 사서 자기보다 어려운 아이에게 선물로 보내기. 산타할아버지에게 비는 소원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소원을 빌고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꼭 판매되는 장난감만이 아니라는 것, 선물은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 생일과 같은 즐거운 날에 나보다 먼저 타인에게 눈을 돌릴 줄 아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조유성원/한양대 문화인류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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