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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태 기자l eephoto@ |
3월 4일, 5일 이틀간 정동극장에서 독주회를 갖는 해금연주자 정수년(41·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씨는 우리나라 해금계의 '디바'로 불린다. 중학교 때 선배들로부터 배운 해금으로 문예진흥원이 주최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음악신동' 소릴 듣고 자랐다. 그 때부터 정수년씨는 '해금은 내 인생의 전부'란 생각을 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대학원 졸업까지 1등은 물론 장학금까지 놓쳐본 적이 없었다. 비결은 연습에 이어진 연습뿐. 연습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그다. KBS국악관현악단 시절 멤버들과 85년 창단한 국내 최초의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은 수백회의 순회공연으로 국악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해금과 양악의 독창적인 크로스오버는 퓨전국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가 키운 이꽃별은 일본에서 한국 해금의 돌풍을 일으켰다. 정수년씨의 해금 연주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며 세련되면서도 소박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해금의 선율 속에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 듣는 이의 마음까지 움직인다는 데 있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하늘보고 구름 보며 보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죠. 안개 낀 남산을 오르던 등굣길, 연습실 창 밖으로 보이던 풍경들이 연주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죠”
대나무와 명주실, 말총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해금이 내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와 많이 닮아 있다. 여기에 자연에서 자라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은 정수년씨의 연주가 더해져 소리로 자연을 풀어낸다. 해금 독주를 위한 창작곡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와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듣고 있으면 선율로 전해지는 풍경이 눈앞에 아스라이 펼쳐질 정도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을 지닌 건 바로 사람의 목소리라고 해요. 목소리와 닮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바로 해금이죠. 목소리 만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내기 때문이에요. 기쁘고 슬픈 것은 물론이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우울한 것까지 사람 감정의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해낼 수 있어요”
활로 첫 음을 낼 때 그 날 연주가 어떨 것인지 감이 온다는 만큼 예민한 그는 연습은 늘 정해진 곳에서 한다. 집과 학교 연구실이 그에게 최상의 작업실이다. 30여년간 해금을 켜오면서 선 무대만도 100회가 넘는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꼴로 독주회를 연다. '슬기둥' 멤버로 섰던 무대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다.
“해금을 배우고 처음 섰던 전국국악경연대회 무대를 잊을 수 없죠. 당시 1등상은 무조건 대금에 돌아갔었는데 해금이 1등상을 받았으니 말이죠. 제게 평생 해금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무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2000년 새벽을 알렸던 '밀레니엄2000' 콘서트 무대도 잊을 수 없네요.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는데 시계가 2000년 1월1일 0시를 알림과 동시에 제 연주가 시작됐거든요. 해금의 선율로 21세기를 연 무대였죠”
그에게 있어 공간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긴 울림을 남기는 우리 악기의 특성상 연주하는 공간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좋은 연주장이 많이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공연장에서 우리 음악 들어보셨어요? 나무로 된 반사막으로 전달돼 오는 우리 악기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요.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죠. 진짜 예술이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힘을 주고, 그래서 우리 모두 착하게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거 아닌가요?”
한정림 기자u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