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둘 늦깎이 배움주부 장화자씨

~a7-1.jpg

불혹을 넘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 위해” 시작한 늦깎이 공부는 장화자씨에게 맑은 글 쓰기와 유치원 원장의 꿈을 안겨주었다.

~a7-2.jpg

1년간 공부했던 양원주부학교 정든 교실에서 장화자씨가 그의 담임이자 멘토인 이상임씨와 즐겁게 얘기하고 있다.

졸업철, 입학철 심심찮게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인간승리' 만학도들에 관한 미담이다. 현실적으로 취업이나 보장된 성공 등 야심에 찬 계획으로 이리 저리 재지 않고 '죽기 전에 내 인생에서 한번 꼭 해보고 싶은 일'로 학교를 택했다는 그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 22일 오전 10시 마포문화센터 대강당에서 치러진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843명 중 한 사람인 장화자(42)씨 역시 만학도의 순수한 열정 면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심장수술 극복 고입검정 합격

3월 방송대 유아교육과 입학

장씨는 어려서부터 앓아온 심장질환으로 88년 1차 수술, 2003년 4월 11시간에 걸친 2차 수술을 받고 지난해 1월 1일 “죽기 전에 무엇인가 다른 일, 남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해보겠다는 새해 결심으로 집 근처의 양원주부학교 고등학교 과정에 등록했다. 이후 5월에 우연히 응모한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에서 우수상을 탄 것을 시작으로 체신청 감사편지 응모대회에서 우수상을, 시흥문학상 공모에서 은상을 수상한 것에 용기를 얻어 수능시험을 치르고 정식으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지원하는 한편, 8월 대입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에 통과함에 따라 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과에도 함께 지원했다. 서울예대는 안타깝게 낙방했지만, 3월부터는 방송대에 입학하게 돼 “어린아이들을 위해 글 쓰는 유치원 원장”으로서의 예전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됐다.

“함께 데리고 살던 동생들을 다 독립시키고 나니 도시락 등 뒷바라지를 안 하게 돼서 해방감을 만끽할 것 같았던 당초 생각과는 달리 고3 엄마들이 아이 수능시험 후 느끼는 것 같은 허탈감과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서른을 넘어서니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늦은 나이에 중국 유학을 감연히 떠나 한·중 수교 기념 전시회까지 연 김순지 씨의 자서전 '별을 쥔 여자'를 읽고 해답을 만난 것 같았어요. 서울만 가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상경했죠”

장씨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듣노라면 '달려라, 하니!'와 캔디의 밝고 당찬 모습에 60년대 산업화의 파고를 타고 동생 뒷바라지에 자신의 삶을 한편으로 밀어놓아야만 했던 농촌(전남 장흥) 소녀 가장의 설움이 짙게 오버랩돼 적잖이 당혹스럽다. 병중이던 어머니는 그의 나이 스물 한 살 때 돌아가셨고, 이어서 한 달도 채 못돼 역시 요양하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4남3녀 중 둘째지만 큰언니의 결혼으로 실질적인 맏이가 된 그에게 부모는 모두 “네가 제일 불쌍하다. 어린 동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십자가' 유언을 남겼다.

20대 초반 '생활전선'에 동생들 독립시키고 우울증

부모와의 사별 후 장씨는 동생 셋은 타지로 보내고 중학생 남동생과 초등학생 여동생만 데리고 읍내로 나와 방을 잡고 조그만 택시기사 사무실에서 사무보조 일을 했다. 그러다가 용달차 영업을 하는 다섯 살 연상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고, 그루터기가 절실해 결혼했다. 남편은 결혼 후 동생들을 함께 데리고 사는 것은 물론,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줬고, 타지에 나간 동생들을 위해 서울에 갈 때마다 집안 냉장고를 털다시피 해 밑반찬과 김치 등을 날라다주면서 신경을 써주었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몸도 아파 애를 못 낳는 데다가 동생 뒤치다꺼리까지 해줘야 하는 당신 같은 여자와 살면 남자가 무슨 재미가 있어 집에 일찍 들어오겠느냐, 그 남자 참 대단하다는 식의 핀잔이었어요. 남편이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도박을 하느라 외박을 해도 그 고통이나 하소연을 남들에게 할 수 없어 속으로만 분을 삭였어요. 그런 남편도 나의 두 차례에 걸친 심장수술에 IMF로 인한 사업실패 탓인지 사십이 넘고 나니 가정적으로 변하더군요”

'원수' 같았던 그의 남편은 남동생과 의류사업을 함께 시작해 제품을 백화점과 TV홈쇼핑 등에 납품하는 등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서 장씨의 늦깎이 배움 길에 적극적인 지원자가 됐다.

결혼 후 24세인 88년 첫 번째 수술을 했지만, 일생 독한 약을 복용해야 하기에 임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38세 때 첫 임신을 하긴 했지만 2차 수술을 앞두고 있어 고민 끝에 낙태를 했다.

“요즘 의학이 발달해서 아기를 가지려면 가질 수도 있겠지만 두 가지 두려움 때문에 임신을 영영 못할 것 같아요. 하나는, 나처럼 심장질환 가진 아이가 태어날까봐, 또 하나는 엄마처럼 아이 크는 것을 다 보지 못하고 내가 먼저 죽게 될까봐….”

두 차례에 걸친 심장수술은 그의 인생관을 백 팔십 도로 변화시켰다.

“지난 두 번째 수술 당시 너무 악화돼 어쩌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고 세브란스병원 길을 내려오면서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길거리에서 하염없이 울면서 생각했죠. 이런 서른 아홉 해를 살려고 내가 그토록 힘들게 살았나, 나를 위해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하면서 너무나 한심해했죠”

각종 생활수기 공모전 휩쓸며 글 쓰기 자신감 생겨

2004년 입학한 양원주부학교는 확실히 그에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멘토를 만났다. 바로 담임인 이상임씨. 장씨에게 생활수기를 써보라고 권유했고, 60∼70대 급우들에게 그의 글을 읽어주고 그의 고단하고 진솔한 삶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실감케 해주었다. 담임선생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여러 곳에 수기를 공모하도록 주선했고, 그는 연이어 수상했다. 내친김에 담임은 자신의 제자가 대학에 진학할 것을 강력히 권했고, 자신의 출신 학교이기도 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합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장씨는 정상인과 다른 몸 상태로 하루 6시간씩 수능을 위해 강행군했고 지난해 11월 17일 수험장인 불광동 동명여고 한 교실에서 2명의 시험감독관 입회 아래 단독으로 시험을 치러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 진학을 위해선 언어 한 영역만 보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산캠퍼스로 입학시험을 보러 갔다. 아쉽게도 그의 특기인 수필이 아닌 콩트가 지정 장르로 채택돼 그는 '뒷모습'을 주제로 '수필 같은' 콩트를 써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하고 힘겨워 하느니 내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기회, 이 시간을 한번 즐겨보자”는 오기가 샘솟아 떨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방송대 유아교육과 입학을 앞두고 있는 장씨에게 주변 사람들은 간혹 묻곤 한다. 그런 약한 몸으로 어떻게 유치원 교사를 하겠느냐고. 그럴 때마다 그는 “유치원 교사가 아니라 유치원 원장 할 거예요”라고 응수하곤 한다. 그러면 또 사람들은 당신이 졸업할 때쯤 되면 저출산 사회에서 유치원끼리 얼마나 경쟁이 심하겠느냐며 혀를 찬다.

“난 이렇게 말하곤 하죠. 난 정말 특별한 유치원을 할 거라고. 아이들을 볼 때 돈부터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부터 먼저 생각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의 유치원에 아이들을 맡길까요. 2년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막내 여동생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미술을 가르쳐주고, 난 아름다운 글과 (조리사 자격증이 있으니)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즐겁게 유치원을 운영할 거예요. 남편에게 말하곤 하죠. 우리 젊어서 돈 많이 벌어 유치원을 하나 열고 늙어 죽을 때까지 예쁜 아기들 많이 많이 보며 살자고요(웃음)”

이제 새 출발을 위해 신발 끈을 다시 매는 그가 늦깎이 공부에서 배운 가장 큰 소득은 무엇일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위한 유치원 경영 '부푼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바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예요. 체험으로 좋은 글이 세상을 밝혀줄 수 있다 믿지만, 난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가르쳐줌으로써 맑은 영을 지니게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쨌든 내 인생이 뒤늦은 공부로 엄청 즐거워졌어요.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예전엔 늘 죽을 생각만 했는데, 이젠 단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빈말이라도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조차 절대 하지 않죠”

박이은경 편집국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