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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내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혜진씨.

“그동안 집안에 무슨 일 있었어요? 돈 벌어야 한다더니 다시 간병인으로 나가요?”

“간병인은 24시간이라 남편이 마음이 안 놓여서 못나가고 미화원으로 취직했어요. 거기서 회식하고 노래방 갔는데 이놈 저놈이 다 더듬더라고요. 그래도 까짓것 참았어요…”

남자는 관리 감독하는 윗선이고 여자는 명령·지시·준수의무를 받는 하부조직을 이루는 것이 보편적인 대한민국 역할구도. 사회 어디에나 완장이란 권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빼곡하다. 건물관리회사에는 감독님 팀장님 .님.님.님들은 남자. 청소아줌마는 몽땅 여자들이라 힘 가진 남자 눈에 들고 나고에 따라 밥줄이 좌지우지한다. 일하고 돈벌러 나간 여자를 쥐꼬리 만한 힘으로 성희롱 하려는 못된 감독. CC TV가 없는 으슥한 귀퉁이나 뒷마당으로 끌어내서 성기를 들이대길 여러 번.

“옷 벗고 달려드는데 가위가 있으면 짤라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팀장님 과장님한테 알렸지요. 그랬더니 적반하장으로 날더러 꼬리쳤다는 거예요. 다른 여자들은 창피하게 왜 난리냐고. 그래서 제가 소리쳤죠. 난 이슬 같이 깨끗한 여자다. 죽어도 성경책 끼고 죽을 거다”

고발하겠다는 그녀의 서슬퍼런 맞짱과 남편의 항의로 회사에서는 감독을 파면조치 했다. 이런 비리가 처음도 아니고 피해자도 있을 테지만 구조적인 관행으로 묵인되는 것은 아닐까. 여자가 독해서 남자 앞길을 가로막고 밥줄 끊어 놓았다거나 재수 없어서 잘못 걸렸다고 사람들은 씹고있을지도 모른다.

'여우 같이 꼬리를 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옷을 벗고 다녀서' 남자로 하여금 성범죄를 저지르게 유혹한다는 여자 원죄론의 최초 주인공은 이브 할머니. 그러나 이브가 아담을 유혹하여 따먹은 금단의 열매는 생명의 탄생과 기쁨을 주는 생식선이 열리는 것을 은유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유혹자로 묘사한 것은 유대의 계급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낮추기 위해서 지어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창조주는 이브에게 고귀한 축복을 내리시어 신과 함께 생명을 창조하는 위대한 힘을 나누어 주셨다. 이브가 안 그런 거 다들 아시죠?

대물림하며 인간들의 뇌리 속에 박힌 유혹설 칩을 제거하라. 뒤집어씌우기 이제 그만!!!!

이유명호 /

남강한의원 원장/

호주제폐지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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