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영화, 방송, 시민운동… 전방위 활약

극장, 촬영장 등 작업장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

@b7-3.jpg

“생각해 보면 전 참 복 많은 놈이에요. 남들이 볼 수 없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거든요.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볼 때 느낌, 잘 모르실 걸요?”(자연인으로서)

“호주제 폐지요? 우리 딸이 바른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으로 한 거죠. 그러고 보니 요즘 정치는 헌법재판소가 다 한다니까요”(시민운동가로서)

“너, 나 같은 친구 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이나 해?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고, 보는 눈이 특이하다고 얼마나 나 챙겨줬는지 기억 나냐고!”(연극 '아트'의 '규태'로서)

배우에게 있어 작업실은 바로 무대다. 무대 위에서 한 배우의 삶은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때로는 진실로, 때로는 허구로 드러난다. 인터뷰를 위해 무대 위에서 만난 배우 권해효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삶과 작품 '아트' 속에 등장하는 '규태', 그리고 시민운동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운동가로서 '권해효'의 모습 모두를 보여주었다.

~b7-4.jpg

<이기태 기자 leephoto@>

“극장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요. 그래서 일하는 현장 어딜 가든 긴장되고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래요. 누구든지 일하는 공간은 편하지 않잖아요. 집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예요”

그런 탓인지 그 만큼 무대 안과 밖의 모습이 다른 사람도 없다. 얼마 전 그는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아내에게 뮤지컬 한 편을 보여준 적이 있다. 공연팀에 양해를 구하고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과 무대에 같이 올라가 아내에게 깜짝 파티를 해줄 계획을 짰는데 자기 작품이 아닌 무대에 서니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단다. 뮤지컬 배우들이 “권해효, 배우 맞아?”라고 두고두고 놀릴 정도로.

“생각해 보면 대학교 4학년 때 학전 김민기 선생님의 제의로 출연했던 '한여름밤의 꿈' 무대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던 유일한 작품이었어요.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무대 위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는 무대 위의 예술가에 대해 '직업인'이라 정의했다. 또 뛰어나고 훌륭한 예술가일수록 '잘 숙련된 기능공'과 같아서 매우 단순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관객을 위해서 한다는 건 나한테는 틀린 얘기예요. 나는 철저하게 나를 위해 무대에 서죠.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관객이 무대 위에 선 저를 좋아해 줄리 없죠”

돈을 받고 무대에 서기 시작했을 때 운 좋게 방송출연으로 이어졌고 첫 작품부터 인기를 얻게 된 배우 권해효. 그 때 그는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소모품이 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다작을 하지 말자'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을 충실히 지킨 덕에 10년 넘도록 무대와 방송, 영화에서 '롱런'하는 배우가 됐다.

“아직도 숙련된 기능공이 되려면 멀었는데…. 배우는 몸이 재료잖아요. 영원히 무대에 서고 싶지만 한계에 부딪치는 날이 오겠죠. 그날까지 좋은 배우, 역량 있는 배우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시민운동 현장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야죠”

그가 출연 중인 작품 '아트'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빈 공간에 한 사람으로 등장해 공간을 채우고 가로질러 다시 저 멀리, 무대 뒤로 사라졌다.

한정림 기자ubi@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