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사은 음악회에서 선생님은 구두를 벗고 제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여러분은 스승보다 훌륭한 제자들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이제 막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초보 학부모들의 마음은 더없이 복잡하다. 아이를 이만큼이나 키워냈구나 하는 뿌듯함과 더불어 아이가 헤쳐 나가야 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마구 섞여 잠을 못 이루게 한다. 그래서 학부모(실제론 거의 엄마를 지칭하는 단어)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아이에게 힘을 주소서, 그리고 부탁드리오니 최소한 '나쁜' 선생님만은 만나지 않게 해 주소서.

한국에서 초중고를 다닌 엄마들은 안다. 학교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에 속하는 이유는 당시만 해도 열악하던 시설이나 빡빡하던 수업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선생님에 얽힌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소위 명사들의 회고담이나 노래가사에 흔히 등장하는 '꿈 많은 학창시절'이라는 단어에도 선생님이 들어갈 자리는 아주 좁다는 것을. 그리하여 동창 모임에선 '꿈을 키워 주던' 선생님보다 '꿈을 깨뜨리던' 선생님에 얽힌, 때로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이 아직도 단골 화젯거리가 되지 않던가.

평생을 통해 존경할 만한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행운인지 잘 아는 엄마들은 한껏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아이가 적어도 '나쁜' 선생님만은 안 만나게 해달라고, 그냥 보통 선생님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아니,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데 누가 '나쁜' 선생님인지 어떻게들 아느냐고? 정말 유감스럽게도, 지금처럼 정보화 사회가 오기 전에도 엄마들 사이에선 이미 그런 유의 정보들은 빠삭하게 알려지던 터였다. 그게 우리네 사회다.

모든 학부모가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던 무렵은 교육여건이 특히 안 좋던 때였던 것 같다.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때는 한 학년이 전국적으로 100만명이나 됐다. 큰애네 반은 100명이나 됐고.

게다가 개발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교사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크게 추락하던 때였다. 천직이니 성직이니 하는 사탕발림도 더 이상 효력이 없었다. 소위 교육비리라는 게 일상다반사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한 게 그 때부터이지 싶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선 어디서나 비밀과외니 촌지 따위의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분노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었다.

엄마들은 서로 질세라 선생님께 촌지를 전했고 돌아와선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욕을 퍼부었다. 아이들이 앞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날 가능성은 그렇게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는 큰애에게 말했었다.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른다고 해라.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게 가장 큰 바보야. 어느 날 아이는 울면서 내게 대들었다. 엄마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났잖아.

속으로는 '나쁜' 선생 같으니라고 하고 화가 솟구쳤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은 다 훌륭하신 분이라고 거짓말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조그만 아이에게 좀 어렵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단다. 니네 선생님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시느라고 마음이 좀 불편하신 분인가 보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

정말이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교사라는 직업은 그에 맞는 적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맡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도 불행하겠지만 그가 평생 동안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검사 아들의 시험답안을 대리 작성해 주었다는 한 교사의 이야기는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 뉴스를 접한 모든 국민의 가슴에 절망을 안겨주지 않는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찾아뵐 스승을 단 한 분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고맙게도 내게는 평생 마음의 기둥으로 자리잡은 스승이 계시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엊그제 나는 지금도 '좋은' 아니 '참 좋은' 선생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 고등학교에 무려 36년이나 평교사로 재직하다 정년 퇴임하는 선생님이었다. 국어를 담당했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음악대학에 진학하여 성악가와 피아니스트가 된 수많은 제자들이 사은음악회를 마련하여 스승의 은퇴를 축하했다. 존경과 사랑이 교감하는 아름다운 그 음악회에서 선생님은 구두를 벗고 제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여러분은 스승보다 훌륭한 제자들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귀한 인연으로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나도 얼마나 행복했던지. 숭실고등학교 이영웅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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