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마지막 발버둥에 자기를 돌아보는 남편과

돌아볼 줄 모르는 남편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다

찬 바람이 불면서부터 '12월의 열대야'와 '부모님 전 상서'를 열심히 보았다.

그 중에서도 남자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눈여겨보았다.

'부모님 전 상서'의 남자 캐릭터는 박창수(허준호 분)만 빼고 모두 보기에 썩 괜찮다. 사람들의 성향을 진보와 보수로 나눌 때 늘 보수적인 사람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지지부진한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인지 구역질이 나기 일쑤인데여기의 보수파들은(안 교감을 위시한 그의 아들들) 바른 삶의 자세를 지킬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니까 '보수'와 '꼴보수'를 구분해야 하는데, 여기서 꼴보수의 양태를 보여주는 사람은 허준호뿐이다. 허준호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김희애(극중 이름 안성실)를 거의 납치하듯이 데려와 결혼을 하고 그 아내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술만 먹으면 '손질'을 한다. 장애아를 눈물로 키우는 아내를 질투하고 미워하고, 자신의 외도도 아내 탓으로 돌린다. 늘 자기 입장만 중요하고 적반하장이 말도 못할 정도의 남자다.

'12월의 열대야'는 그동안 외도를 일삼는 남성들을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여자의 지난한 홀로서기와 정반대의 문제를 다룬다. 여기선 여자가 외도하고 여자가 떠나고 남자가 그것을 용서하고 기다리고 남는다. 신성우는 자기와 아내를, 주변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남자다. 평소 이야기도 안 통하는데다 가난하고 순진한 아내 엄정화(극중 이름 오영심)가 결혼생활 10년 만에 사랑을 찾아 마치 불나방처럼 그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민감하게 알아챈 그는 처음엔 분노와 질투를 느끼지만 마침내 아내의 외도와 지난날을 이해하고 지켜보는 남편이다. 그는 아내의 고통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자신의 어떤 면에 아내가 질렸는지를 서서히 깨닫는, 그가 아내와 정부가 떠난 오두막까지 찾아와 '그를 잘 보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할 때는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과연 저런 남편도 있을까.

두 사람이 같은 것은 아내를 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것은 그 이후의 삶이다. 여자가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발버둥칠 때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남자와 돌아볼 줄 모르는 남자의 삶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둘 다 이혼하고 따로 살 수도 있겠지만 신성우가 도달할 지점이 덜 불안하다면 허준호의 끝이 너무도 처참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권혁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전 편집위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