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인지적 관점에서 정부정책을 살펴본다

학교 예산이 제대로만 쓰인다면엄마들 청소·배식 동원도 없고

일자리도 생기고 모두가 즐겁다

가정의 살림살이에도 돈을 써야 할 곳과 아껴야 할 곳이 있듯이 나라살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라살림인 만큼 수많은 의견과 이해관계들이 모이고, 다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나라 살림에 여성들의 삶의 요구가 녹아들어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로 보호주의적 관점에서 여성 대상 정책은 있어 왔지만, 일반 시민의 요구로서 여성들의 요구라는 인식은 아직도 미진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초등학교 저학년의 자녀를 둔 어머니는 학교로부터 1년에 여러 차례 부름을 받는다. 학부모 설명회도 아니고, 학교 행사 자원봉사도 아닌 배식과 청소를 위해서 말이다. 학교에서 모든 자녀들의 명단을 짜서 '어머니'가 오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가정으로 안내문을 돌린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 학기에 급식 2번, 청소 2번에서 심지어 최고 한 달에 2번까지 청소와 급식만을 위해서 8번에서 20번까지 뛰어야 한다. 물론 모든 어머니가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생각보다 많이 일을 하고 있다. 여성경제활동 참여율은 평균 50%를 밑돌지만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여성들은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때문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경제활동참여율은 집계된 것만 해도 65%에 달한다. 때문에 아이들의 할머니나 이모가 대신 가기도 하고, 아주 가끔 아버지가 가는 '특별한 사건'도 발생한다. 이도 안되면 파출부를 일당 2만원 주고 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모든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혹 어느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청소와 배식은 학교의 기본 운영에 관한 사항이다. 이것은 운동회나 미술제 등 각종 학교 행사에 시간이 되는 부모가 자원봉사해 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한 초등학교에서 청소와 배식에 드는 여성 무급 노동의 가치를 화폐가치로 환산해 보았더니 연간 약 5000만원. 이것을 전국의 초등학교 수로 곱해 버리면, 약 1000억원에서 2000억원 규모의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쓰일 곳에 쓰이지 않는 예산은 여러 사람 괴롭히게 된다.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에게 자녀 학교로부터의 낮 시간 호출은 가든, 가지 않든 계속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성 인지적 예산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서 여성의 요구를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안에 문제와 해답이 보인다. 청소와 배식에 학교 예산이 제대로 사용된다면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 직장 다니는 여성 그리고 직장, 지역사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 청소와 배식의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남녀에게는 좋은 기회도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렇게 효율적인 성 인지적 예산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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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순

국회 여성위원회 입법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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