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라는 이름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함흥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그 음식점 여기 저기테이블에는 짙은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계셨다. 내 옆자리에는 비록 할아버지 네 분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할머니 네 분이 따로 한 테이블에 앉긴 했지만, 테이블이 나란히 붙어있는 것으로 보나 서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나 네 쌍의 부부 모임인 것 같았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어르신들은 무슨 말씀들을 하시나 궁금한 마음에 입으로는 열심히 냉면을 먹으면서도 내 두 귀는 그 쪽을 향해 쫑긋 세워져있었다.

할아버지들은 정치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함경도 사투리는 소리가 크고 거친 부분이 있어 언뜻 들으면 다투는 것 같기 때문에 떨어져 앉은 내게도 아주 잘 들렸다. 양보할 줄 모르고 싸움만 해대는 정치인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아무래도 북한이 고향이신 까닭에 남북문제와 통일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주고받으며 열띤 토론을 하셨다. 통일될 때까지는 금강산 구경도 안 가겠다는 한 어르신의 결심에는 찬반으로 나뉘어 말씀들을 주고받으셨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할아버지들이 같은 고향 친구 사이이고, 할머니들은 남편들을 따라 나와서 서로 사귀게 된 친구들인 것 같았다. 네 분의 할머니 가운데 두 분만 함경도 말씨를 쓰셨다. 할머니들은 역시 제일 먼저 건강 이야기를 나누셨다. 무릎이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잠을 못 잔다, 어느 병원이 좋다고 하더라, 뭘 다려 먹으니 효과가 있더라, 정말이지 건강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덧 이야기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넘어가서 그 드라마 재미있더라, 아니 이쪽 채널에서 하는 게 더 낫다, 아무개는 정말 연기를 잘한다, 작가가 워낙 잘 써서 그렇다, 드라마 이야기 역시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불쑥 말씀하신다. “그나저나 새해에도 여덟 명 다 한 달에 한 번씩 얼굴 봐야할텐데, 그러려면 모두들 건강해야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옆 테이블의 남편 할아버지들까지 다들 맞장구를 치신다.

노년기에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보통 네 가지를 꼽는다. '네 가지 고통'이라고 해서 '사고(四苦)'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빈곤(경제적인 어려움), 질병(건강의 문제), 무위(無爲:역할 없음, 사회적인 문제), 고독과 소외(정서적인 문제)이다. 자식을 노후보험이라 여기며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지금의 어르신 세대는 일단 가난하다. 자식들 혹은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노년이 힘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어르신들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계신다. 나이 먹어 찾아오는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에도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노년에는 대부분 아무런 역할이 없어 고통을 겪는다. 가족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위축감은 결국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고독과 소외감이 뒤따르게 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서럽고 쓸쓸한 노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노년의 네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 정부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하고 미루기에는 고통받는 노년인구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름 아닌 바로 내일의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멀리 갈 것 없이 내 부모님, 내 이웃의 어르신들이 이 네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부터 좀 돕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노년이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거기가 노년준비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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