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요한 정책이라도 당시 장관만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전임 장관들이 뿌린 씨앗에 근거하는 유장한 정책의 과정이다.

여성부 대회의실에는 88년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최초의 정부기구로 발족된 정무장관(제2)실 시절 장관을 지낸 여덟 분의 사진과 세 분의 전임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초대 여성부장관을 지낸 한명숙 의원의 사진이 걸려있다. 곧 전임 지은희 장관의 사진도 걸릴 것이다.

어느 장관이든 그들의 재임은 여성정책이 꾸준히 추진되고 발전하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한 장관의 업적을 그 장관이 재임 중에 이룩한 몇 가지 눈에 띄는 성과 위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결과가 드러나는 시점이 그 장관의 재임 중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많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것이 순수한 독창성으로 한번에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대부분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정책수요가 포착되면 이를 부처 내부에서 토의하고 연구하고 협의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한 가지 정책 주제가 형성된 뒤에는 정부 내 관련부처와 협의하거나 정부 외부의 관련 기관이나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수렴해야 된다. 마지막으로 여론의 지지도 이끌어 내야 겨우 하나의 정책으로서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그 과정은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호주제 폐지와 같은 주제는 몇 십 년이 걸렸으나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실행하게 된 정책도 끊임없이 내용이 변화하며 발전하는 속성이 있다.

한 명의 장관이 재임하는 기간을 단면으로 보면 어떤 정책 주제는 이제 막 가시적인 수요가 인지되고 있고, 어떤 것은 정책으로서 형성되고 있고, 또 어떤 것은 무난하게 추진되는 과정에 있기도 하다. 또 어떤 정책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쇠퇴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장관이 새로 취임하면 그렇게 다양한 진화과정에 있는 정책 주제 중에서 좀 더 속도를 내서 자신의 재임 중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몇 가지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그것이 그 장관의 업적으로 남는다. 따라서 어떤 중요한 정책이라도 당시 장관만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전임 장관들이 뿌린 텃밭과 씨앗에 근거하는 유장한 정책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 취임한 장하진 장관도 선배 장관들이 뿌려 놓은 씨앗 중 많은 것을 거두고 또한 많은 씨를 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여성정책이 더욱 풍성해지고 발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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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우

여성부 정책총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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