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지난해는 참으로 일이 많은 한 해였지만 연말에 동남아 일대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이 불러온 재앙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이 하찮았던 일처럼 느껴진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십만 명 대의 살상자를 낼 수도 있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인가. 환경파괴에 대한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 제일주의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것은 어찌되든 혼자만은 잘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인류는 결국 머지않아 종말을 맞을 것인가.

이런 처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 가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고 있는 구호의 손길들이다. 워낙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국적이나 거리, 사회 계층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청해서 도움에 나서고 있다. 사람들이 아직도 인간적으로 살아 있으며 인류애라는 것도 아직은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속에서 민망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것이 우리나라다. 우리 사정이 워낙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 정부가 제시했던 구호금의 규모는 너무도 초라했고 정치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북한 용천에 사고가 났을 때와 비교하면 우리 언론 매체들도 이번 일을 너무도 조용히 다루고 있으며 구호성금 모으기에도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만약에 우리 한반도에 어떤 참사가 닥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어떤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이 우리 교육에서는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민족이라는 추상적 구호에는 이따금씩 감상적으로 들뜨지만 사실은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는 이기적 인간들을 길러 왔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인간들이 엄청난 고난을 당해도 그들이 직접 자기 가족이 아닌 한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하는 능력이 매우 무뎌졌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찌했을까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구호에 동참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편히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었어야 했다.

교육의 기본은 나하고 남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느끼며 생각하는 습성을 기르는 데 있다. 그러한 능력을 가졌는가가 인간과 금수를 구분하는 특징이고 인간교육도, 시민교육도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시험점수 따기를 교육의 중심 목표로 착각하게 만드는 교육제도 때문에 교육에서 잊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황금의 법칙'이라는 별칭을 가진 교육의 이 핵심사항이다.

교육에서 '황금의 법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굳이 먼 나라들에 불어 닥친 재난을 생각해야 할 필요도 없다. 짐을 들고 쩔쩔매는 여자가 열어 놓은 문 사이로 재빨리 먼저 빠져나가는 젊은 남자부터 몸이 약한 남편이나 늙은 부모를 팽개치고 자녀교육을 빙자하여 외국 살림을 차리는 주부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예는 생활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물며 큰 이권을 두고 다투며 으르렁거리는 정치판에서야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랴.

사실 예절이라는 것의 핵심은 따지고 보면 이 '황금의 법칙'이 인간의 심리 속으로 내면화되었다가 환경적 여건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일 뿐 일부러 익혀야 할 거추장스러운 관행이 아니다. 문화마다 관습은 약간 다를지라도 인간성의 기본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과 나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느끼며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심리적 능력의 배양 없이 형식으로만 주입되는 예절 교육은 삶에 힘이 되기보다 마치 일상 생활과는 상관없는 부담처럼만 여겨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고 행복의 제일 조건이 사랑을 받는 것임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예의를 지키는 것, 다시 말해 남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그 다음 단계 추리에 이르면 모두가 숙맥이 되는 듯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나라의 격을 살리려면 '황금법칙'이 몸에 배게 하는 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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