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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

여성학자, 상지대 강사

혹시 독자들 중에 감기에 걸려 약을 사먹을 때 복용량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본 분이 있으신지? 대개의 경우 그 기준은 15세 미만과 그 이상으로 나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대부분은 15세 이상 성인에 해당하는 복용량을 자신의 정량으로 간주하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15세 이상 성인'이라는 범주는 중년 남성의 신체적 조건을 표준으로 하여 설정된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표준과는 아주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성은 생물학적이든 사회적이든 삶의 조건에서 남성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남성' '남성적인 것'이 표준 또는 규범으로 간주된다. 이제는 여성이 지닌 '차이'에 대해 인식하고 인정하며, 이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가야 할 때다.

'성 인지적 관점(性 認知的 觀點)'이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성 인지성이란 남녀가 직면한 삶의 조건의 차이와 그로부터 형성되는 경험·이해·요구의 다름을 인식하며(인식론), 이러한 차이들에 내포된 사회적 불평등성을 이해하고(가치론),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이를 해결해 갈 것인가(방법론)에 관심을 갖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성 인지적 관점이나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맥락에서 젠더 이슈(gender issues)를 찾아내고 이를 정책 결정과 집행의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젠더 이슈인가를 파악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며, 이를 위해서는 여성주의적 가치에 대한 신념과 이에 대한 높은 수준의 감수성이 요구된다. 성 인지적 정책이란 '젠더'라는 요인에 대한 '인지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의식적으로 실천해 가는 작업, 즉 인간의 주관성과 의식적 차원에 크게 의존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젠더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문제의식과 둔감성을 극복하고 인간이 지닌 다양한 차이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감수성의 수준을 높여 가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나라살림을 계획하고 꾸릴 때 자연스레 그 대상을 '국민' 또는 '시민'으로 설정해 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의 대상은 '여성국민' 이거나 '남성국민'이 되어야 한다. '국민'이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집합명사일 뿐이며 현실의 삶에 존재하는 것은 여성이거나 남성인, 어느 하나의 성을 가진 국민이기 때문이다. 차이를 수용하는 정책의 출발점은 국민은 여성 또는 남성으로 이뤄져 있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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