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70년대부터 지금까지 교육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항상 목표로 내세웠던 것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줄기는 고사하고 높아만 가서 '선행학습'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학원이나 과외 수업이 제도권 교육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공교육에 대한 불만은 이제 국내의 학원이나 과외에 대한 의존을 넘어서서 조기유학과 어학연수, 해외 대학과 대학원 유학 등의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며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외국의 교육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사교육도 세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라고 불리는 현상은 이제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널리, 그것도 많이 배우고 생각이 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너도나도 해외로…교육시장도 외국에 잠식

외국에 대한 교육의존도의 심화는 우리 교육에 투자되어야 할 막대한 부의 유출과 국내 교육시장의 잠식을 유발할 뿐 아니라 건전한 가정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이 교육부터 외국인들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긴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핏줄만 한국인이라고 해서 어릴 적부터 가정과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젊은이들이 어디까지 한국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 안목을 기른다는 것과 국적 없는 혼백마저 외국에 빼앗긴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교육도 따라 발전하며 자립력을 기르는 대신 더욱 더 외국 의존도가 심해지는 이유는 교육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는 우리의 교육정책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교육에서 시장의 원리에 맡길 부분과 교육 원칙과 철학으로 고집할 것을 항상 혼동하며 교육의 원리를 정치적 고려에 종속시키는 해묵은 관행 때문에 우리 교육은 질 좋은 교육에 대한 구매력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평준화의 틀에 묶여서 학생들의 개인별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학교들은 허울만 남고 실질적인 교육의 거래는 교육 철학에는 관심 가질 필요 없이 교육시장 확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교육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활비로 남보다 몇 배의 돈을 쓰며 외국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사람들이 자녀들의 교육에서만은 학업 지도에서 성이 차지 않을 뿐 아니라 부정과 폭력이 판치는 평준화된 학교의 싸구려 교육에 만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교육의 정치화'가 질 떨어뜨려

교육을 시장원리에 맡기고 부의 세습을 영속화하자는 이야기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내용이나 방법을 그렇게 하자는 말이 물론 아니며 교육 기회의 공정 보장이라는 점에서는 국가의 개입과 지원이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힘으로 평등하게 보장할 수 있는 교육기회의 하한선, 곧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누구나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는 권리라는 선에서 만족하지 않고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더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에 보내겠다면 그것까지 막을 힘은 없다는 말이다.

교육에 관한 일체를 믿고 맡겨도 좋을 만한 공립학교를 국가나 지자체가 만들어 주거나 만족할 만한 좋은 사립학교들이 국내에 많이 생기도록 장려한다면 우리 공교육을 살찌게 해야 할 돈과 자식을 학교 밖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나라 밖으로 내몰고 스스로는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자처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립에 '자율'을, 공립에 '투자'를

교육부는 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영재교육안을 내놓았다. 영재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모두가 자기 자식은 영재로 기르겠다고 벼르고 있는 풍토에서 5% 또는 10%의 학생들을 영재로 발탁하는 일을 어떻게 해낼지가 의문이고 또 다른 과외열풍이 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소수를 정예로 기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자라나는 젊은이 누구나가 다 잠재력의 최선을 개발할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완전 자율화하고 그 대신 정부는 평준화된 공립학교들을 사립학교 못지않은 질 좋은 학교로 개선해 나가는 데 예산과 정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정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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