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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에 추진된 서울 '용산구·숙명여자대학교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시범사업 중에서 노인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이름은 '멋진 노년 알콩달콩 살기'였다. 복지관 강의실에 들어서니 60대와 70대 어머님들 서른 분이 앉아 계셨는데, 이제 막 한글을 깨치신 한글교실 동급생들이셨다. 눈으로는 웃고, 입으로는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손으로는 신나게 박수를 치는 '인사법'으로 시작해, 둘씩 짝을 지어 서로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소리내어 인사하기), 손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는(짝꿍 칭찬 세 가지씩 하기) 것으로 분위기를 푼 다음 강의에 들어갔다.

강의 중간에 문득 전날 본 연극 생각이 나서 줄거리를 들려드리게 되었다. '계집애라고 글도 못 배우게 한 아버지, 그 아버지는 논 세 마지기를 받고 딸을 낯선 남자에게 내어준다. 사랑을 맹세한 동네 총각 '산복'을 떠나 팔려가듯 시집가는 '일순'. 남편은 아내의 이름마저 바꿔버리고, 거기다가 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남편의 바람기, 네 살이 되도록 걷지 못하는 큰아들, 이어서 6·25전쟁. 시어머니 홀로 놔두고 떠난 피란길에서 남편은 식구를 팽개쳐둔 채 사라지고, 몸은 성치 못해도 마음만은 착하기 그지없는 큰아들마저 그만 전쟁통에 잃고 만다…' 연극 제목은 '손숙의 어머니'였다.

연극 속 어머니가 살아오신 세월은 바로 그 자리에 계신 어머님들도 다 겪으신 것이었기에 직접 보지 않고 이야기만 들으시는 데도 다들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연극 마지막에 가슴 속 한을 다 풀어낸 어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배워 자신의 진짜 이름 '황일순'을 쓰고는 더 이상 미련 없이 죽은 남편을 따라 나선다고 하자 어머님들이 너나할 것 없이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다. 한 어머님이 코를 훌쩍거리더니 말씀하신다. “글자 모르는 서러움, 안 당해 본 사람은 몰라!”

계집애라고 글을 못 배우게 한 연극 속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과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세상을 떠나는 주인공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곧바로 감정이입이 되면서 눈물로 이어진 것이리라. 순간 어머님들의 맺힌 한이 고스란히 전해오면서 나도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을 배우는 용기와 노력을 진심으로 칭찬해 드리니 부끄럽고 쑥스러워 하면서도 금방 얼굴 가득 웃음이 넘치신다.

복지관에 근무할 때 스승의 날이 되면 송구하게도 어르신들이 카네이션이며 감사카드며 정성이 담긴 선물들을 주곤 하셨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한글을 막 배워서 쓰신 어머님들의 비뚤배뚤한 편지였다. 다시 꺼내서 읽을 때마다 가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한글을 배우시는 어머님들은 이름을 처음 쓰던 날의 감격을 아주 각별하게 간직하고 계시고, 혼자 힘으로 간판 읽은 경험을 들려주실 때가 많다. 글자를 처음 배워서 쓰신 어머님들의 편지를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로 꼽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한 무게로 어머님들은 자신들의 뒤늦은 배움을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신다. '멋진 노년 알콩달콩 살기'가 뭐 별건가. 한글교실 어머님들처럼 당신들 평생에 하고 싶었던 일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선물이 오가는 때에 이르고 보니 어르신들이 진정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참, 한 가지 아쉬운 것은 3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손숙의 어머니'는 연로하신 어머님들을 위한 관람료 할인이 없다는 점이다. 어머니 이야기를 바로 그 어머니들이 같이 보신다면 좋은 선물이 됐을 텐데, 서운하고 안타깝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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