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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으로서 최초로 과학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현대 과학의 역사가 깊은 선진국에서는 1800년대에도 상당수의 여성 과학자들이 있었고 마리 퀴리(1864∼1934)가 190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뿌리깊은 유교문화와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것조차 금기시하였으니 과학자가 되기는 더더구나 어려웠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전공 여성 박사는 66년 일본 구주대학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혁혁한 활동을 한 김삼순(金三純)이다. 1929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공중보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송복신(宋福信)과 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생물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이유한(李瑜漢) 여사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외국에서 활동한 데다 공식적인 자세한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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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김삼순 박사가 귀국할 때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박사학위를 받으신 소감이 어떻습니까”“한국에서의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퍼부었을 정도로 과학분야 여성 박사가 신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불과 38년 전의 일이다.

52세 늦깎이 일본 유학 박사학위 받아

김삼순은 한일합방 한해 전인 1909년 전남 담양군 창평면의 대부호 집안의 3남 4녀의 셋째 딸로 태어나 '창평의 창덕궁'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공부 욕심이 대단해 툭하면 밤을 새워 책을 보다가 해가 뜨면 학교로 달려가곤 했다. 여자는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던 시절, 그녀를 포함해 자식 3명을 일본에 유학시킬 정도로 남다른 재력과 교육열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명문인 서울의 경기고녀로 진학했다.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던 '시골 아기'는 서울의 문물을 놀라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신문명을 익히려면 과학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1929년 경기고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1933년 일본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진명여고와 경기여고에서 교편을 잡는다. 학문의 열정을 식힐 수 없어 1941년에 일본의 북해도제국대학으로 간 그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했는데 1943년 식물학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받자 대동아전쟁이 발발하여 귀국하게 된다. 45년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농과대학, 문리과대학 등에서 강사로 전전하면서 고심하던 그는 61년 52세의 나이에 일본 유학을 결심한다. “52세에 연구생이라니!”하며 모두가 말렸지만 아무도 그의 굳은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북해도대학의 연구생으로 연구경험을 얻은 그는 63년 구주대학의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서 응용미생물학을 전공해 66년 남들은 직장을 그만둘 나이인 57세에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페니실린 발견으로 미생물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었는데 그는 버섯, 효모, 곰팡이의 세계가 그야말로 재밌기만 했다. 미생물과 빛의 상호관계에 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영국을 비롯한 세계 20여개국 학회에 소개되기도 했다.

느타리버섯 인공재배로 산업화 '시금석'

선생 업적 기리는 '성지학술상' 제정돼

귀국 후 그는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응용균학(菌은 곰팡이, 버섯, 이끼 등을 말함) 분야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며 우리나라 균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72년 한국균학회를 창립하여 4년간 회장을 맡았다. 당시는 양송이버섯을 제외하고는 모두 야생버섯을 따다 수출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들여온 종균으로 느타리버섯 인공재배법을 연구해 농가에 보급, 오늘날 느타리버섯 산업의 기초를 마련했다. 78년 정년퇴임을 한 뒤에는 미생물연구소를 설립하여 버섯 연구에 몰두, 국내 자생버섯 700여종 가운데 300여종을 수록한 '한국산 버섯도감'을 90년 발간했다. 79년에는 학술원상을 수상했으며 81년에는 학자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고자 한국균학회는 그의 아호를 딴 '성지(聲至)학술상'을 제정하고 91년부터 시상하고 있다.

그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어서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옷가게에 가서 옷을 골라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90세의 나이에 위암 수술을 받고도 버섯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2001년 9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어려서부터 과학자가 되고자 했으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또 여성이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시대의 편견도 이겨내고 52세에 유학을 간 그가, 50세 전후에 직장에서 퇴직하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진우기/ 번역작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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