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대학 강단을 떠나 8년간 외교분야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다음 가끔 하는 일이 경제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종사해온 교육이나 외교분야에 관해 강연을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약간 주눅이 든다. 그래서 아예 사과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서는 인생을 돌아보며 자긍심을 느끼실 것입니다. 자연인으로서나 기업인으로서나 자신이 물려받은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이룩해 놓는 데 성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면에서 불행한 사람입니다. 국내외에서 제가 받은 교육보다도 훨씬 못한 교육을 후진에게 시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책감에서 해방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능부정 최대 피해자는 바로 자신

내가 느끼는 자책감이란 편견일 수도, 과장일 수도 있다. 사실 여러 면에서 지금의 우리 학생들은 전보다 지적 수준이 높은 교육을 받고 있고 국민 전체의 학력수준을 보면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높아졌다. 대학의 강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사실 요즘 내가 즐기는 일 가운데 하나가 후배 또는 제자들이 쓴 좋은 책들을 읽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경제발전을 성취한 주역들 앞에서 주눅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우리가 지금 학생들에게 시키고 있는 교육이 전보다 나은 교육인가에 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 전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뚜렷한 증거 한 가지는 이번에 벌어진 대형 수능부정 사건에서 드러났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범위가 넓고 뿌리가 깊음이 드러나는 이 사건, 그래서 오히려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교사들, 적당한 선에서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부정을 막기 위한 기술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그 사건을 마무리지어 국민의 뇌리에서 씻어 버리려고만 하고, 그 발생 원인을 따져 근절책을 마련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교육부의 자세, 이 모든 것이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다. 시험부정을 하다 발각되면 정학이나 퇴학이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시험부정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에 앞서 자신의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정 경쟁보다 성적 지상주의만 배워

시험 부정이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까지도 공공연한 비밀이 된 것은 학생들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반교육적이라는 이상한 미신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 기를 죽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급학교에서는 시험을 보아 성적평가를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우리 교육정책을 지배한 지 오래되니 시험을 보았을 때 부정은 절대 안된다는 것을 가르칠 겨를도 없다. 실력평가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 제각각 자기 아이는 천재라고 믿는 어머니들 등살에 시달리게 되니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받는 일일 것이다. 인간 교육, 지식 교육 양쪽이 함께 파산 선고를 받는 것이다.

고학력 인플레는 교육 발전의 허상

덕성 교육의 실패는 제쳐놓고 지식 교육만 보더라도 학력수준이 높아진 것만으로 교육이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학교 다니는 연한을 늘릴 수 있으니, 그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경제발전에 따른 결과이지 교육 자체가 발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교육이 발전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전에는 5년에 비우던 것을 4년에 소화한다든가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하다든가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학력수준이 높아진 것은 오히려 교육의 인플레 현상일 수도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경제적, 사회적 자립이 지연된다면 그것은 교육의 후퇴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많다.

갑신년을 뒤로하며 우리가 생각할 일은 무엇이 과연 교육의 발전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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