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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이니 만큼 여기 저기 복지관이나 시설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감사모임이 한창이다. 자원봉사자 송년모임, 자원봉사자의 밤, 자원봉사 한마음잔치, 자원봉사자 시상식 등의 이름으로 마련되는 이런 자리에서는 1년 동안 특별히 활동이 두드러졌거나 500시간 혹은 700시간 등 최장 봉사시간을 기록한 봉사자들을 뽑아 시상을 하고, 정성껏 준비한 다과나 식사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나누면서 새해에도 변함없이 활동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또한 자원봉사자의 자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갖기도 하는데, 이럴 때 내가 강사로 불려가 귀한 시간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서울 북쪽의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시립노인요양원 자원봉사자 송년 모임에 다녀왔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 시간도 소중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며칠 내내 떠나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에 배낭을 멘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수락산 등산로를 따라 20분쯤 걸어 올라가니 아담한 건물 한 채가 산을 뒤로하고 계곡을 내려다보며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스물세 분, 할머니 마흔일곱 분해서 모두 일흔 분의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사시는 그곳은 주거복지시설인 양로원과는 달리 몸이 편찮으셔서 도저히 혼자서는 생활하실 수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복지시설이다.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의 병을 지니고 계시고, 한번 입소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돌봐드리는데 전액 국비와 시비로 운영되는 무료 시설이다.

유리창 밖으로 산과 나무들이 훤히 내다보이고, 깨끗한 환자복에, 절절 끓는 방바닥, 세 끼 따뜻한 식사. 복잡하고 자잘한 일상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계셔서일까, 어르신들은 오히려 홀가분하고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십 년 모르고 살아오시던 분들이 한 방에 여섯 분씩 모여 사시는데 어찌 어려움이 없을까. 또 제각각의 식성과 식습관이 굳어있을 텐데 정해진 식사시간과 식단에 적응하는 데 왜 힘들지 않으시겠는가. 단체생활에 맞추는 어려움이 어디 음식 한 가지뿐일까. 그래서일 것이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은 표현을 잘 하지 않으시고 부정적인 면이 강해서 “그건 해서 뭐해?”하는 말씀을 가장 많이 하신다고 한다. 건물 아래층 한 편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보니 시신을 안치하는 스테인리스 냉동고 세 칸과 고운 먼지 내려앉은 텅 빈 빈소가 눈에 들어온다. 생의 마지막을 의탁한 그곳에서 임종을 하시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라고 한다. 몇 년 동안 정붙여 살던 곳을 떠나 '전문요양원'같은 또 다른 생소한 곳에서 임종을 하시는 경우도 있으니까.

잎 떨군 나무들 사이에서 어르신들은 어떤 꿈들을 꾸실까. 고향, 어린 시절, 가족, 아니면 이 세상을 떠나서 가게 될 그 어느 곳…. 그곳에서 낙엽이 지듯 삶도 소리 없이 지고 있었다. 우리들 생의 마지막은 어디에서 보내게 될까. 정직하게 그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요양원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 자신이 마지막 살 곳으로 그곳을 염두에 두셨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아무리 따뜻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내 집을 떠나 가족 곁을 떠나 낯모르는 이들과 함께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마지막 나날을 지내게 될 것을 꿈꾼 적이 있었을까. 요양원을 뒤에 두고 수락산 등산로를 되밟아 내려오는 길, 늙어감과 죽음이라는 우리들 삶의 너무도 분명한 길이 내 가슴 속에 또 한 번 새겨진다. 나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마지막을 보낼까, 내 노년의 그림을 그려보는 일은 그래서 참으로 중요하다. 그림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은 준비하며 사는 사람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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