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변종으로 '유전자 위치 이동' 학설 증명

학계서 30년간 '이단아'…분자생물학으로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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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바바라 매클린톡이 81세의 나이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을 때 그녀는 아직도 은퇴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현역 과학자였다.

“염색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할수록 염색체가 더 커지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연구에 몰두했을 때 나는 옥수수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그 안에,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때 모든 것이 커졌다. 심지어 옥수수의 내부기관까지도 보였다”

그렇게 스스로 옥수수가 되어 옥수수를 들여다보던 그녀는 자신이 관찰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획기적인 학설을 내놓았다. 유전자의 염색체 상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유전자의 위치 이동' 이론이었다. 식물이 악조건에 놓이면 유전자의 이동이 더 많아진다는 그녀의 생각은 정말 대담한 발상이었고 학계를 당황하게 했다. 당연히 그녀는 멘델과 마찬가지로 30년간이나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이단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에 발달된 분자생물학이 그녀의 말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학자들이 '튀는 유전자(jumping gene)'를 처음에는 박테리아에서, 후에는 이스트, 초파리, 식물, 쥐, 인간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매클린톡은 코넬대학에 들어갔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던 식물육종학과에서 여학생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녀는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꾸었다. 1927년 코넬대학에서 식물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매클린톡은 정규직을 구할 수 없어 코넬대학 강사, 국립연구재단과 구겐하임재단의 펠로, 코넬대학의 연구원 등을 전전하다가 1936년 마침내 미주리대학 조교수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정년보장에서도 탈락되자 5년 후 그곳을 떠나 콜드스프링하버의 연구원으로 가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매클린톡은 인내심뿐만 아니라 유머감각도 있는 여성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후에 그녀는 당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개최한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만찬에 초대되었다. 그런데 초청자 목록에 서명하려던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 앞에는 다 닥터(Dr)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데 유독 자신의 이름 앞에만 미즈(Ms)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 옆에다가 당시 유행하던 표어인 '나는 왜 존중받지 못하는 거야!(I don't get no respect)'라고 써넣었다. '나는 왜 존중받지 못하는 거야!'는 당대 미국 서민들의 심정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로서 당시 이미 코미디계의 전설이었던 로드니 데인저필드의 대표적 표어였다.

진우기/ 번역작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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