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를 통해 타인을 존중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차원에서의 소통방식

인터넷으로 성매매를 검색해 출력을 한 후 두툼하게 쌓인 종이를 한 장씩 넘겨보니 허섭스레기 같은 글도 있었지만, 좋은 글도 많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성의 성욕'에 대한 분석이다. 전문가랍시고 정신과 의사의 권위를 빌려 글을 실어놓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어쩌고 하는 말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여성학자들의 분석이 훨씬 뛰어났지만, 그 언어가 남성들에게 좀처럼 실감 있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은 늘 안타깝다. 그래서 난 틈새를 파고들기로 했다.

자위를 처음 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첫 경험(?)의 상대는 당시 유행하던 미연시 게임(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의 캐릭터였는데, 말이 연애지 실상 게임의 초점은 작업을 해서 하룻밤을 보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질리는 것은 잠깐이었다. 자위를 하고 휴지로 정액을 훔쳐낼 때마다의 비릿한 냄새 만큼의 강렬함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허탈함만 커졌다. 더 강렬한 것이 필요했다. 주위에는 많은 자원이 널려 있었고 미연시 게임도 업그레이드되어 강간을 소재로 한 게임까지 등장했다. 서사구도에서 출발한 내 섹스 판타지는 서서히 파편화된 이미지들로 대체됐다. 어느새 정보통신 강국답게 방에서 마우스만 몇 번 클릭해도 다양한 장르의 고화질 '야동'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욕을 감당하기 힘들다면 성매매 대신 자위를 하라는 권고에 남성들은 발끈한다. “어디 자위랑 그게 같아?” 맞다. 성매매는 자위랑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나 경험을 돌이켜 보건데, 다른 종류의 사유가 필요하진 않나 싶다. 성(性)이 나에게 현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오랫동안, 손을 잡으면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여성(혹은 남성)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고작해야 256컬러 미소녀가 그나마 제일 인간적으로 교감한 대상이었다는 것, 그밖에는 사정을 향해서 힘차게 돌진하는 성난 성기뿐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고백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매매와 자위 사이의 차이는 미연시 게임과 야동을 보면서 하는 자위 사이의 차이와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지 않다. 내가 미연시 게임에 물렸을 때 더 강렬한 것을 찾았던 것처럼, 성매매는 해볼 만큼 해본 남성들이 만들어낸 군색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마네킹을 본뜬 자위기구는 왜 존재하는 건데? 집창촌에 간 남성들은 왜 15분 만에 나오는 건데? 언제 한국 남성들이 15분 만에 인간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단 말인가.

남성이 성행위를 할 때 그는 현존하는 두 육체의 만남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환상을 펼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 성에 굶주린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매매가 아니라 신체를 통해 타인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차원에서의 강렬한 소통방식이다.

성매매를 둘러싼 한국 남성들의 집단 히스테리는 남성들이 자신의 불감증에 대해서 얼마나 무능력한지 잘 드러내준다. 남성의 행복추구권은 성매매에 있지 않다. 성매매특별법은 남성의 신체에 새겨진 관성에서 벗어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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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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