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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석

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역지사지란 것이 참 힘든 일인 모양이다. 성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상대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놓고서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신체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들과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의 기생으로 이어져왔던 것이니 성매매도 관습헌법”이라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정말로 남성의 성욕이란 것이 통제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성욕 침해' 주장 전에 '역지사지'를

통제 불가능한 인간의 욕망이란 것은 없다. '남성 성욕 통제 불가론'은 성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성들이 만들어낸 해괴망측한 주장이다.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폭력을 합리화하는 데 실패한 이 논리는, 정당한 자본주의적 거래라는 이유로 성매매를 합리화하는 데 다시 동원되었다.

거래의 절차가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거래될 수는 없다. 성적 노동을 노동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성이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것은 장기를 매매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성을 사고 파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사회적으로 금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방식과 환경은 더욱 심각하게 폭력적이고 반인간적이므로 사회적으로 금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회적 합의에 많은 남성이 동의하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역지사지가 문제다.

남성들에게 성폭력의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 항상 겪는 곤란은 남성들이 성폭력이 어떤 것인지 실감을 못 한다는 것이다.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 상상해 볼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도 실은 잘 안 된다. 심지어는 성폭력에 대한 상상도 성적 판타지의 일부이므로, 그것이 왜 불쾌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 때 마지막 방법은 이런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어떤 여성이 성폭력에 처한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소중한 친구일 수도 있는 여성에게 가해질 수 있는 성폭력을 상상해보라는 것.

성폭력인지 쾌락인지 구별 못해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누이이거나, 딸이거나, 부인이거나, 여자친구인 그녀가 성매매를 자신의 직업으로 가지겠다고 하면, 당신은 동의하겠는가. 그것을 정상적인 노동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는가. 나는 저 용감무쌍한 남성들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사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 성매매를 해야 하는 여성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그래서 자신 주변의 누군가는 성매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테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그 일'을 한다면…

거기까지 가면 된 거다. 내게 소중한 누군가에게 옳지 않은 일이라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필시 소중한 사람일 그 어떤 여성에게도,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입장 바꿔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성매매는 금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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