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컴퓨터·대리시험까지 '부정' 눈덩이

총체적 '도덕적 해이'가 학생 부정 내몰아

한나라당 대책위 구성…23일쯤 결과 발표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부정행위가 광주 외에도 서울, 충남, 전북, 전남 등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수사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서울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11월 30일 SK텔레콤과 LG텔레콤에서 제공한 휴대폰 문자 메시지 24만8000건을 조회한 결과, 서울 4개조 10명, 충남 2개조 4명, 전북 8개조 39명, 광주 전남 7개조 29명 등 82명이 부정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12월 1일엔 청주의 한 입시 학원장이 삼수생이 보낸 수능 답안 숫자 메시지를 학원 컴퓨터를 통해 학생 10명에게 재전송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또한 대리시험을 치렀다는 자수가 접수되면서 부정행위 사건의 여파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수능 부정행위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66만여명의 수험생들, 학부모, 교육관련 단체, 전문가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단체들은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 시험감독을 소홀히 한 시·도 교육청 관계자 문책과 함께 수능 제도의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고 3학생 이모(19)양은 “수능 당일 전까지 휴대폰 부정행위 제보가 인터넷에 떠돈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이렇게 현실화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며 “미리 대처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경기도 신도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5년째 고3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김모(35)씨는 “큰 충격을 받은 학생들도 있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식의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학내 분위기를 전하면서 “쉽게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이기심과 타성에 젖어 있는 시험감독의 관행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김씨는 “우리 학교에서도 2년 전부터 시험기간 중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며 “그때마다 부정행위 과목 영점 처리, 사회봉사명령이란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데 그치고 있다”고 전하면서 자신도 '부정행위의 방조자'라고 고백했다.

주부 이경숙(48)씨는 “1년간 수험생 학부모로 지내면서 대학입시가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칼 잡은 사람 마음대로'란 생각이 들어 허탈감을 많이 느꼈다”며 “밤잠 설치며 열심히 공부한 내 딸과 같은 학생들이 최대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에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대학입시를 마치 '도박'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양승실 부연구위원은 “수능 부정행위 사건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사고하는 청소년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으로 벌어진 것”이라며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듯, 교육은 일관성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함에도'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결과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가 부정행위 학생들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양 위원은 “자기 학교 학생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내신을 부풀리는 등 공정하지 못한 처신을 한 교사와 학부모들도 사태의 책임이 있으며 4월부터 인터넷으로 수능부정행위 제보를 받고도 대처하지 못한 교육당국도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번에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차원에서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부정행위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수능을 대학자격고사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부터 부정행위 학생들에 대한 처벌 수위, 휴대폰 회사들이 경찰청에 문자 메시지 내용을 공개한 것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논란까지 다양한 의견이 포털사이트 및 언론사 자유게시판에 오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수능부정행위가 큰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은 11월 26일 수험생의 부정행위의 전말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교육 당국 및 유관 기관들의 사전 대비가 미흡했는지 검토하며 근본적인 제도개선책을 마련하고자 수능부정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원희룡 최고위원)를 구성해 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조사 결과는 12월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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