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상황 뚫고 나갈 힘은 바로 모성...에밀리 연기한 장만위의 빛나는 연기

~a9-3.jpg

왕년에 잘나갔던 록 가수 리와 그의 아내 에밀리. 예전의 영광은 온데 간데 없고 이젠 음반 계약도 잘 들어오지 않고 마약에 빠져 사는 신세가 된다. 캐나다 공연 중, 리와 에밀리는 한바탕 싸우게 되고 에밀리는 숙소를 뛰쳐나온다. 다음날 아침 리는 마약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되고 숙소로 돌아온 에밀리는 마약 소지죄로 6개월의 형을 받는다. 형을 마치고 출감하지만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혼자 남게 된 에밀리에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리의 음악적 부진과 마약중독, 마약으로 인한 죽음을 에밀리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마약중독자 엄마는 아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아들을 캐나다의 시부모에게 남긴 채 파리로 온 에밀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다소 뻔하지만, 영화는 에밀리의 절망적 상황과 변화의 과정, 어린아들을 보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성을 과장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보여주며 새로운 희망의 싹을 조심스레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삶을 바꾸고 변화하는 것,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법이다.

모든 사람들이 에밀리에게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며 마약중독자였던 그녀를 포기할 때, '사람은 변한다, 변해야 할 상황이 오면…'이라며 에밀리를 믿어주고 격려해준 시아버지와 친구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에밀리의 새 삶도 가능했을 것이다. 록 가수의 아내이자, 에밀리 그 자신이 음악을 시작하게 되는 설정에 맞게 영화 속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장만위(張曼玉)가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는 멋들어지지는 않지만 진솔한 느낌으로 가슴을 울린다.

영화'클린'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에밀리를 연기한 장만위이다. 이제 마흔이 넘은 장만위는 쾌락을 위해 자신을 망가뜨렸던 이제까지의 삶을 지우고 새롭게 자신을 추스르며 당당히 일어서는 여성의 역할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화양연화'에서 보여준 우아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가히 2004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연기다. 장만위의 전남편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클린'의 이야기를 쓸 때부터 그녀를 위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장만위는 서양인에 가깝다고, 그래서 서양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중국여인 캐릭터가 아닌, 인종에 상관없이 어떤 배우라도 연기할 수 있는 에밀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장만위는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중국여인이 아니라 보편적인 여성,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배준이/ 티 하우스 나무사이로 운영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