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 경종울린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으로 DDT 농약 남용 경고... 미국 환경보호법·지구의 날 제정 촉진

'20세기를 움직인 저서·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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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도 '레이첼 카슨 평전'(린다 리어 지음, 샨티 펴냄)이 번역 출간돼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64)은 생물학자였지만 아주 드물게도 문학적 감성을 갖추고 있었고, 그를 통해 자신이 연구한 학문적 결과를 쉽고 아름다운 문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자연관, 즉 사람은 생태계를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다만 끝없이 연결된 생명의 망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교육하는 데 삶을 바쳤다. 실제로 그는 저서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The Sense of Wonder)'에서 “어린이에게나, 어린이를 인도해야 할 어른에게나,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 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자연과 관련한 사실들은, 말하자면 씨앗이다. 그 씨앗은 나중에 커서 지식과 지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봄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숲과 바다에는 죽음의 정적만이 깔려있을 뿐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사라졌고 새들은 노래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표지를 시작한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DDT농약의 과용과 오용을 환경적 차원에서 경고한 책이다. 충실한 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담은 이 책은 “인간은 지구를 파멸시킴으로써 종말을 맞을 것이다”라고 예언한 슈바이처에게 헌정되었다. 책은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일간지들은 “어느 SF가 그려낸 악몽의 시나리오도 우리 삶을 파괴하고 있는 원흉들의 가공할 자화상을 그렇게 잘 묘사할 수 없으리라”는 서평을 썼다. 레이첼 카슨은 이 책으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고, 그의 책은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들이 뽑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 중 4위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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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출간 후의 레이첼 카슨(62년). 샨티 제공

과학의 역사에서 DDT처럼 짧고도 극적이며 역설적인 역사도 없을 것이다. DDT를 발명한 스위스의 화학자 폴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는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수십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살충제의 영광을 누렸고 세계 식량생산 증가에 기여한 공로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62년 카슨의 연구가 출간되면서 DDT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학계와 산업계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카슨에 의해 살충제(pesticide)가 아닌 '살생제(biocide)'로 불린 DDT는 이제 선진국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투로 사망한 전사자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전사자의 수를 더 적게 만든 지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DDT는 80년대 들어 한 여성의 '펜'의 힘으로 사용 금지되는 운명을 겪게 된 것이다.

반면, 카슨의 주장에 대한 산업계와 과학계의 공격은 대단했다. 농약제조업체들은 살충제가 인간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미국의 농업에 별다른 해를 주지 않는다며 '레이첼 카슨의 잘못된 주장이 문명을 중세의 암흑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고 공격했고, 저널리스트나 과학평론가들은 카슨이 '감정에 호소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히스테릭한 여성'이라고 몰아붙였다. 또한 다우 케미칼은 '침묵의 봄'을 풍자한 '침묵의 가을(Silent Autumn)'을 만들었다.

하지만 침묵의 봄이 촉발시킨 환경재난 논의는 69년 닉슨 대통령의 환경보호법안의 제정으로 이어져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발족시켰고 '지구의 날'(70년)을 탄생시켰다.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스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카슨은 어린 시절 주변 환경과 어머니로부터 자연에 대한 사랑을 물려받았다. 펜실베이니아여자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동물학으로 석사학위를 하고 우즈홀 해양과학연구소, 미 연방 야생동식물보호국의 직원으로 일했다.

레이첼 카슨의 공격자들 중에는 그를 '과학계의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이라고 불렀다. 캐리는 도끼를 들고 금주령 실천에 앞장서 술집을 공격하고 부쉈던 여성이다. 정부관리들이 감히 집행하지 못하던 법을 알코올중독자였던 전남편 때문에 딸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던 주부 캐리가 실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슨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은 전혀 캐리와 같지 않음을 증명했다. 자신은 감성에 휘둘리는 운동가가 아니라 진리를 찾는 자연과학자이며 다만 유독성 화학물질의 오남용에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땅으로 스며든 과량의 DDT가 오래도록 토양에 남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과 함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대중이기에 대중에게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다 주고 대중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정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이 광대하고 신비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금 시대에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특히나 중요하다. 인간은 자연을 바꾸고 파괴할 가공할 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만큼 자연을 향한 전쟁은 결국 인간 자신을 향한 전쟁이다”그녀가 암으로 5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암이라는 치명적인 병마와 싸워가면서 이뤄낸 백조의 마지막 노래와 같은 저술이다. 뉴욕타임스는 '침묵의 봄'의 일부 내용이 '뉴요커'에 연재될 당시 이런 논평을 했다.

“레이첼 카슨의 연재기사가 장사꾼들의 감언이설로부터 정부기관이 놓여나 마침내 적절한 통제조치를 취하게끔 하도록 한다면, 카슨은 DDT의 발명자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노벨상을 수상해야 할 것이다”

진우기/ 번역작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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