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신체 불법 유형력’ ‘공포심 일으킬 협박’
있으면 강제추행죄 처벌… 판단 기준 완화

대법원이 ‘저항이 곤란한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아니더라도 유형력(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힘)을 수반하면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40년 전부터 유지된 기존 법리를 뒤집어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 판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아도 된다”며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과 협박은)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판단의 근거로 형법 제298조 및 성폭력처벌법 제5조 제2항을 언급했다.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상대방을 추행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그동안 법원은 ‘최협의설’(최대한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뜻)에 기반해 항거가 불가능한 폭행·협박이 있어야 강간과 강제추행으로 인정해왔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 관한 현행 규정은 폭행‧협박의 정도를 명시적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강제추행죄 성립에 ‘피해자의 반항이 곤란할 것’을 요구하는 건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의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A씨는 2014년 당시 10대였던 사촌 동생을 끌어안아 침대에 쓰러뜨리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자리를 피하려는 사촌 동생을 따라가 강제로 추행했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을 심리한 고등군사법원은 “A씨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으면 인정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등 추행 혐의만 적용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건을 군사법원이 아닌 서울고등법원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