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지원으로 74년 시작... 여성 의식화 '큰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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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강원룡 목사와 학생들이 중간집단 교육의 성격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역할은 괄목할 만하다. 65년 설립된 크리스찬아카데미는 초기 선교, 사회봉사, 경제자립,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 여성, 기독교와 타종교간의 대화, 방송과 대중 등에 초점을 두었다. 특히 강조됐던 것이 '대화'로, 아카데미 출발 첫해에 가졌던 15회의 대화 모임에는 각계 각층 인사 464명이 참여했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담론 생산과 교육 활동에도 주력해 오다 2000년 대화문화아카데미로 명칭을 변경하고 새로운 활동을 모색 중이다.

특히 크리스찬아카데미는 민주화, 인간화를 위한 사회교육인 중간집단 교육을 장기간에 걸친 사업으로 기획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지원을 받아 74년부터 교육사업에 나섰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사회, 학생사회, 교회사회, 산업사회, 농촌사회 5개 분야에 걸친 지도력 양성을 위한 중간집단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방법은 기존의 주입식 강의가 분반토론, 전체토론을 통한 참가식 교육, 노래와 촌극을 통한 의식화 교육으로 이뤄졌다.

이미경 의원(열린우리당)은 당시를 회상하며 “여성 중간집단 교육이 새로운 여성운동에 목말라 있던 여성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전한다. 이정자 녹색미래 대표는 당시 교육을 통해 “사물을 옳게 보는 잣대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며 “'인간화''양극화 해소'의 두 제목이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안팎으로 혼란스럽던 유신시절 중간집단 교육 세대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노동 분야 간사였던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은 당시 “노동 교육의 구체적인 목표 중 하나가 어용노조 극복과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할 민주노조의 싹을 양성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아카데미의 2차 교육과정은 '민주노조의 좌표설정'이란 주제로 전개되다가 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중단됐다.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중간집단 교육과 아카데미의 활동을 '용공'으로 규정, 강원룡 목사를 비롯해 한명숙, 이우재 등 당시 간사들과 수강생들을 연행, 압수수색 한 사건이다. 이 때 산업사회 교육 이수생이자 노조 여성지부장이었던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연행되는 등 파란을 겪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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