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노약자도 편히 쓸 수 있는
기능·디자인 속속 선보여

엄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때 늘 신경 쓰는 것이 있다. 글을 너무 길게 보내면 안 된다는 점이다. 주로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노안이 심해져서 화면상 폰트 크기를 가장 크게 설정해 뒀다. 그러니 메시지 한 줄당 글자가 너덧 개 들어간다. 노란 말풍선이 그렇게 길어질 수가 없었다. 단어가 토막토막 끊어진 카톡 창에서, 메시지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 또 ‘아차’ 싶은 순간을 맞닥뜨렸다. 이번 추석에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늘 쓰고 있는 노션(문서작성기)에 각종 일정을 기록해 전송했다. 엄마는 습관적으로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뗐다 하며 화면을 확대하고자 했지만, 문서 파일을 확대해 보는 기능은 휴대전화에 들어있지 않았다. 문득 “컴퓨터 켜서 확인해 보시라”고 말하려다, ‘노안이 있다는 이유로, 왜 100만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충분히 쓰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늘 중요하게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디자인이 고려돼야 하고, 이로써 디지털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이론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의 가장 큰 학회에서도, 논문을 제출할 때 표나 그림이 있으면 무조건 그에 대한 설명(alt text)을 별도로 입력하게 한다. 그래야 시각장애인도 텍스트 이외의 자료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계 없이 표준이 될 수 있는 디자인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치 자막 기능을 청각장애인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 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면서도 써먹을 수 있듯이 말이다. 얼마 전 애플에서 제한적으로 공개한 ‘자막 및 청각 장애인용 자막’ 기능은 동영상뿐 아니라 오디오 콘텐츠에 대해서도 자막을 실시간으로 자동 생성해 제공한다. 큰 집중력이 필요했던 영어 팟캐스트를 텍스트로 자동 전환해 볼 수 있어서 꽤 편리하게 쓰고 있다.
아이폰 iOS 17 베타 버전에 들어간 ‘개인 음성’과 ‘실시간 말하기’ 기능도 무척 인상적이다. 자막과 마찬가지로 ‘접근성’ 옵션에 포함된 기능인데, 원래는 질병으로 인해 언어나 목소리를 서서히 잃어가는 이들을 위한 기능이라 한다. 미리 자신의 목소리와 말투를 데이터로 제공해 AI 모델로 학습시키면, 향후 텍스트 입력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로 남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직접 해봤다.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150개의 영어 문장을 휴대전화에 대고 읽고, 하루 정도 ‘모델 생성 시간’을 보냈다. 아직 영어 문장만 생성되지만, 어느 문장이든 나와 꽤 비슷한 말투와 음성으로 실시간으로 읽는 걸 듣고는 조금 닭살이 돋았다.
놀라운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렇게 적은 입력 데이터로도 충분히 많은 언어적 표현을 내 목소리로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습부터 구동까지의 과정을 내 휴대전화 안에서 해결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 데이터가 애플 서버로 전송돼 모델로 학습된 뒤 내 휴대전화로 다시 전송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생성 모델이 내 휴대전화에서 가볍게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점은 꽤 놀라웠다. 남의 목소리를 빠르게 훔쳐서 보이스피싱을 할 수 있겠다는 걱정도 꽤 크지만, 이걸 잘만 쓰면 꽤 귀찮은 ‘영어 발표 말하기’ 같은 건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이 기능이 상용화되면 직접 말하기 귀찮고 번거로운, 혹은 쑥스러운 통화들을 단번에 대체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말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 말하기’ 기능도 돋보인다. 저시력자들은 어렴풋하게 보이는 글자들을 드래그하면 오디오로 내용을 들을 수 있다.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라는 소셜 벤처는 시각장애인이 텍스트와 장면을 찍어 올리면,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이 빠르게 설명을 입력해 알려주는 앱을 운영했다. 요즘은 GPT-4 같은 생성 언어 기술도 활용해 시각장애인들이 주변의 사물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기능이 우리가 매일 끼고 사는 휴대전화에 가볍게 들어온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일상과 생활의 틈을 빠르게, 우리가 들고 다니는 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기왕이면 약자를 위한 기능을 좀 더 경계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잘 디자인해 줬으면 좋겠다.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을 갖춘 기술은 사람을 더 널리 이롭게 한다.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⑧ 이상행동 탐지·채팅앱 신고...AI로 스토킹 막으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68
⑨ 일하다 죽지 않게 만들 기술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998
⑩ ‘AI 예술가’는 이미 현실, 이제 창작자들이 연대해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28
⑪ 요즘 대세 ‘챗GPT’ 이후의 AI는 어떻게 진화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50
⑫ ‘박사학위자의 결혼 조건은?’ 챗GPT에 물어보니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690
⑬ 편견·차별 없는 AI 만들려면? 챗GPT가 던진 질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074
⑭ 막 오른 빅테크 AI 대전...사람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139
⑮ AI 시대, 밀려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42
⑯ “코로나19 응급실 어디야?” 빙AI·챗GPT도 답 못했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388
⑰ 세계 첫 ‘AI법’ 제정한 EU...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587
⑱ 기업분석·자서전도 AI에 맡기는 시대, 인간이 주도권 쥐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8571
⑲ AI는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9584
⑳ 내 목소리 따라하고 글자 읽어주는 스마트폰이 온다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