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학교교육을 정상화하여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교육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정부가 내세웠던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었다. 이번에 교육부가 내놓은 대안은 대학신입생 선발에서 이른 바 '3불'(대학별 본고사, 고교 등급화, 기여입학제 금지)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수능의 변별력과 비중을 대폭 줄이고 내신 성적을 강조하는 것인 듯하다. 과연 그것으로 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의 필요성이 줄어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출신 학생들의 사회진출 기회가 향상될 것인가.

나는 대단히 의심스럽다고 보며 새로 나온 대학 신입생 선발안은 2002년도에 채택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안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신 상대평가제 정답 아니다

우리의 교육정책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개혁안이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검증되지 않은 가정과 단세포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검증되지 않은 가정 중 하나가 학생들의 성적을 절대점수와 자연적 석차로 반영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등급화하는 것이 학생들이 느끼는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덜어주는 길이며 고등학교별 성적을 상급학교 진학기회와 직결시키는 것이 전국 공통의 별도의 시험을 보게 하는 것보다 더 교육적이라는 발상이다. 또 다른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학원 수업이나 과외는 대학별 본고사나 수능시험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평준화된 학교 수업에 대한 불만과 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우선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보더라도 89점부터 80점까지는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79점은 70점과 함께 그보다 낮은 등급으로 분류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초등학교에서 처음부터 수우미 정도로 성적을 대충 평가하는 것과 과목별 시험성적이 확연하게 구분되는데 그것을 다시 뭉뚱그려 등급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더욱이 수월성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등급화의 폐해는 더 심하다. 고등학교 졸업반쯤 되어서는 학습 '잠재력'은 이미 많은 양의 지식을 바르게 소화해서 자기 말과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며 복잡한 수학문제도 풀어내는 구조적 사고 능력으로 훈련되어 있어야지 대학에서 대학다운 수업을 할 수 있다.

'좋은 대학' 고질병이 잠재력 꺾어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교 졸업 때까지도 그것을 실력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대학보다는 다른 경로를 통해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여 백분 발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낡은 학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부모들의 허영심이나 노파심을 잠재우기 위해 그들을 '좋은 대학' 진학이라는 협소한 길로만 몰고 가려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더 공정하고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미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대통령도 될 수 있고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스타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협동심 결핍과 시기심 부추겨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상대평가제의 내신제도가 가지는 보다 더 심각한 반 교육적 결함은 그것이 공교육의 제일목표가 되어야 할 협동정신을 해친다는 점이다. 학내에서는 석차가 있더라도 밖에서 보는 시험에서는 학교 전체가 다른 학교보다 좋은 성적을 내서 다 같이 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학생들은 강한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된다. 서로 도와가며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자기보다 우수한 학생들이 있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학내 상대평가 성적이 곧바로 상급학교 진학기회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 학우들은 모두가 경쟁자 아니면 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국민의 고질병인 협동심 결핍과 시기심을 바로 교육제도가 조장하는 것이다.

'교육 정상화'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단세포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각적으로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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